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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 한국 문단의 아마존 ‘정유정’
꾸준히 소설 쓰며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어
기사입력 2013-11-26 오후 18:45:21

◇ 간호사 경험은 내 소설의 자양분 … 삶과 죽음 마주하며 세계관 넓어져

“베링해가 훅, 사라졌다. 백색 어둠이 그 자리를 채웠다.”

첫 문장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가슴을 누른다. 정유정 작가의 장편소설 `28'은 시작부터 숨 돌릴 틈을 주지 않고 달려간다. 치밀하고 압도적인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하는 작가의 마력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왜 한국 문단의 아마존(그리스 신화 속 여전사)으로 평가받는지 두 말이 필요 없다.

'7년의 밤'(32만부)에 이어 신작 '28'(16만부) 역시 베스트셀러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정유정은 스타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간호학을 전공한 그가 문학적인 족보도 계통도 없다는 꼬리표를 떼고 한국 문단의 중심에 당당히 섰다.

“간호사로 일했던 모든 시간들이 글을 쓰는 데 큰 자양분이 되고 있다”고 말하는 정유정 작가를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1월 6일 만났다. 광주 집에서 막 서울에 도착한 작가는 여러 인터뷰와 `책 읽는 국회의원 모임'에서 초청받은 저자 특강까지 스케줄이 빼곡했다.

■ 명실공히 스타 작가다. 인기를 실감하나.

“그냥 평범한 일상이다. 독자들을 만날 때는 조금 느낌이 온다. 최근 머리를 비우고 싶어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했다. 5400m 고지에서 한국인 대학생을 만났는데 팬이라고 하더라. 사인 해주고 같이 인증샷을 찍었는데, 참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산영화제에도 초청돼 팬들과 3일간 함께 영화 보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독자들을 만나면 새로운 에너지가 충전된다.”

■ 어려서부터 꿈꾸던 작가가 됐다. 얼마나 행복한가.

“작가라는 직업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 같다. 글 쓸 때만 빼면(웃음). 한 줄도 써지지 않을 때는 벽에 머리를 찧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다 문장이 머릿속을 깨고 나왔을 때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특히 첫 문장을 결정하는 데 엄청난 고통의 시간을 겪는다.”

■ 공모전 당선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11번 떨어지고 12번째에 당선 소식을 들었다. 길고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소설가가 되기 위해 도전한 과정은 온전히 나를 위해 후회 없이 보낸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힘을 쏟아 노력했고 혹독하게 연습했다. 운도 따랐다. 하지만 운 역시 잡을 준비가 된 사람에게 오는 거라 생각한다.”

■ 간호사 경력이 어떤 영향을 미쳤나.

“사실 문단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내 심장을 쏴라'는 정신병동, `28'은 응급실이 배경이다. 내가 잘 알고 있고, 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 '7년의 밤'에 이어 `28'도 반응이 뜨겁다.

“스릴러를 이렇게 좋아하실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특히 독자들이 한국 작가의 스릴러에는 냉담한 편인데, 사랑받게 돼 감사하다. 내 문학의 스승은 스티븐 킹(Stephen King)이다. 그린마일, 쇼생크 탈출, 미저리 등을 쓴 스릴러와 호러 소설의 대가다.”

■ '28' 주인공 중 한 명이 간호사인데.

“간호사 `수진'은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아수라장이 된 응급실을 마지막까지 지킨다. 캐릭터를 잡기 전에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스스로에게 물었다. 수진처럼 헌신했을 거다. 간호사라면 대부분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당당하게 수진을 그렸다. 많은 독자들이 수진을 통해 간호사를 다시 이해하게 됐다고 말해줄 때 뿌듯하다.”

■ 치밀한 스토리와 디테일한 묘사가 압권이다.

“소설을 구상하면서 취재에만 6개월이 넘는 시간을 투자한다. 자료조사를 철저히 하기 때문에 세밀한 묘사가 가능하다. `28'을 위해 바이러스학, 동물심리학, 동물행동학, 개해부학 등 십여 권의 책을 읽었다. 수의학과와 응급의학과 교수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직접 응급실에 가 최신 동향을 살폈고, 간호사들의 역할도 다시 꼼꼼히 관찰했다. 남편(소방학교 교관)도 늘 든든한 지원군이다.”

■ 원래 꼼꼼한 성격인가.

“아니다. 덜렁대는 편이었는데, 간호대학에 다니면서 달라졌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서 훈련되다 보니 완전히 바뀌었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 결국 내 소설의 출발점이 된 셈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대가가 따른다.”

■ 간호사 정유정은 어떤 사람이었나.

“어렸을 때부터 작가를 꿈꿨는데, 간호대학에 가게 됐고 처음엔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정신간호학 수업은 흥미롭고 좋았다. 병원에 다니는 동안 정말 치열하게 일했고, 암과 투병하는 어머니를 돌보면서 청춘을 보냈다. 솔직히 힘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오늘의 나를 있게 만든 거다. 특히 수많은 삶과 죽음을 마주하며 세계관이 넓고 깊어진 게 가장 큰 선물이다.”

■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무엇을 주고 싶은가.

“내 소설은 인간에 대한 탐구다. 인간의 내면에는 선과 악, 천국과 지옥, 혼란과 질서가 함께 있다. 그래서 사이코패스 같은 캐릭터나 잔인한 묘사도 나오는 것이다. 자신이 살아보지 못한 강렬한 인생과 정서를 소설을 통해 만나게 해주고 싶다. 독자 스스로 생각하고 희망을 찾아나갈 수 있도록.”

■ 작가를 꿈꾸는 누군가의 롤모델이 됐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간호사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실제 문의를 해오는 사람도 있다. 간호사는 정말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그만큼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좋은 소설가가 될 수 있다.”

■ 다음 작품 계획은.

“이번에 다녀온 히말라야 트레킹 여행기를 준비하고 있다. 언제 고갈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2년에 한 권씩, 작품성을 갖춘 정유정 스타일의 소설을 꾸준하게 쓰는 것이 목표다. 진정한 이야기꾼으로 불리고 싶다.”


◇ 정유정 작가는 1966년 전남 함평 출생으로, 기독간호대를 졸업했다. 광주보훈병원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간 일했다.

2007년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로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2009년 '내 심장을 쏴라'로 제5회 세계문학상에 당선됐다. 3권의 장편소설을 냈다.

◇ 내 심장을 쏴라(2009년) = 25세 동갑내기 두 청년의 파란만장한 정신병원 탈출기다. 제도에 순응한 채 타성에 젖은 수명이 운명에 당당히 맞서는 승민을 만나 자신을 찾고, 세상을 향한 돌파구로 나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강렬한 주제의식과 탁월한 구성, 스토리를 관통하는 유머와 반전이 빼어난 작품이다.

◇ 7년의 밤(2011년) = 우발적으로 소녀를 살해한 후 죄책감을 갖고 살아가는 남자와 딸을 죽인 범인의 아들에게 복수를 하려는 남자의 대결을 액자식 구조로 다루고 있다. 선과 악, 사실과 이면, 인간의 본성, 삶의 의지에 관한 이야기를 힘 있는 문장과 압도적인 서사로 담아냈다.

◇ 28(2013년) = 발병하면 사나흘 안에 죽음에 이르는 인수공통전염병으로 봉쇄된 도시에서 벌어지는 28일간의 이야기를 담은 재난소설이다. 숨 쉴 틈 없이 달려가는 문장, 리얼리티와 긴박감이 살아 있는 흡인력 높은 작품으로 3인칭 다중시점의 소설이다.

대담 = 정규숙 편집국장 / 정리 = 김숙현 기자

정규숙기자  kschung@koreanur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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