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5-09-22 오전 11:32:16

미국의 국력에 비례해 자원봉사자들의 활동 역시 막강함을 느끼게 된다. 특히 병원에서 그들의 존재는 더없이 뚜렷하고 돋보인다. 필자가 일하는 임직원클리닉에서는 3000여 명의 유급직원은 물론 300～400명(여름방학에는 더 많아짐)에 가까운 자원봉사자들 진료도 맡고 있다. 만 14세가 되면 누구나 자원봉사자로 지원할 수 있는데, 단 18세 이하인 경우에는 보호자의 동의 서명이 있어야 한다. 한국의 학제로 보면 중학교 2학년이 최연소 연령이다.

방학동안 잠깐 봉사하려고 해도 정규직원들이 받는 혈액검사와 결핵감염에 대비한 PPD 접종절차를 똑같이 받는다. 물론 B형 간염이나 독감 예방주사 등 일반 의료혜택도 동등하다. 자원봉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매년 정기검진을 거쳐야 하는 것도 같다.

재정적으로 윤택한 기관에서는 무료로 점심을 주기도 하지만 최근에는 구조조정으로 인해 중지한 곳이 많다고 한다. 이곳 웨스트체스터 메디컬센터에서는 자원봉사 햇수에 따라 조그만 배지를 주었는데 최근에는 그것도 없어졌다.

지난 달에는 25년이나 봉사한 할머니가 “기념배지를 많이 기다렸는데…”라면서 조금은 서운한 표정을 했다. 그녀의 목표는 30년을 채우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74세이니 팔십을 맞으면 그만 은퇴하려고 한다고 귀띔해준다. 유난히 피부가 맑은 이 은발의 여인은 연세보다 십년이나 젊어보였는데 남을 위해서 그녀의 금쪽같은 시간을 이만큼 할애할 수 있다면 천사의 모습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 오는 지원자의 모습들도 각양각색이다. 14세의 의과대학 지망생, 일주일에 5일간 학생들을 가르치고 2～3일 저녁 어린이병동에서 책을 읽어주는 교사 출신, 열 살 미만의 삼 남매를 키우면서도 20시간 가까이 이동도서실을 돕는 전업주부 등 이루 다 나열할 수 없다. 지난주에는 몸을 겨우 가누는 선천성 뇌성마비 장애자 남성이 연로한 어머니의 부축을 받으며 진료실을 다녀갔다. 무슨 과에서 일을 할 예정이냐고 물어보았더니 보호자가 면회를 오지 않는 아이들과 함께 게임도 하고 그냥 놀아주는 일을 할거라면서 한껏 웃었다. 3개월 된 첫 아이를 잃고 주 40시간을 강행군하면서 그 슬픔을 일로 달래어 보려는 젊은여인의 모습에 진료를 끝내고는 한참이나 가슴이 무거웠었다.

지금 미국은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를 복구하는데 힘을 모으고 있다. 자원봉사자의 대명사인 미국적십자사의 활동이 온통 텔레비전 화면을 채운다. 전기가 없는 중환자실에서 교대 없는 근무를 70시간 이상 한 의사와 간호사를 비롯한 의료팀이 있고, 유명 연예인들이 대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어떤 트럭 운전자는 마실 물을 한 트럭 싣고 가서 수재민들에게 나주어 주었다고 한다.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인 오프라 윈프리가 뉴올리언스의 긴급 대피소를 방문해 그 참상에 가슴 아파하면서 우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면서 이곳 사람들의 철저한 봉사정신을 재삼 확인한다.

김옥수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