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2-09-26 오전 11:11:38

최근 연구논문 발표가 많아지면서 논문의 도용과 관련된 시비가 심심치 않게 거론되고 있다.
　
나 역시 얼마전 내 박사논문의 일부를 베껴 석사학위를 받은 모 여대 교육심리학과 논문을 발견하고 아연실색한 적이 있다. 논문의 80%이상을 베껴 쓴 것은 물론 연구결과의 도표까지도 그대로 썼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용 문헌 어디에도 원저자의 이름을 찾을 수 없게 조작했다는 점이다. 해당 학교로 통고한 결과 그 학생의 학위는 취소하고, 학적은 영구제적하며, 지도교수에게는 엄중경고를 주고, 각 도서관으로 나간 논문은 모두 회수하겠다는 회신을 받았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야 하는지. 이렇게라도 해서 학위를 취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최근 한층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학력 인플레이션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본다.

* `인용'과 베끼기

　들어보니 전공분야가 다른 경우 뿐만 아니라 같은 학제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학제가 다른 경우에는 화라도 맘껏 낼 수 있지만 같은 전공에서는 울며겨자먹기로 넘어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나 자신도 논문을 쓰고 학생을 지도하는 입장에서 그저 넘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부끄러운 일이니만치 드러내어 모두 각성하고 문제점을 짚어봄으로써 더 이상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연구는 선행연구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내 논문이든 남의 논문이든 연구 주제와 관련되는 선행연구를 바탕으로 나의 관심사를 전개하고 이를 검증하는 것이다. 그러니 선행연구자의 학문적 조망, 연구 방법, 연구 결과를 보완적으로 혹은 비판적으로 인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인용이 논리적으로 적합하면 얼마든지 좋은 연구가 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학문적 조망 혹은 연구 방법이나 결과가 많이 인용되고 유용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선행 연구자에게도 더없이 기쁜 일이다. 서로의 아는 바를 인정하여 공유하며 상생의 효과를 얻는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왜 다른 사람의 지적 성과를 몰래 쓰는가, 인용한다고 밝히면 당당하고 서로 좋을 것을, 그렇게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 욕심일 것이다. 남의 것이 탐나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려는 도둑 심리이다. 둘째, 게으름이다. 노력하지 않고 결과를 얻으려는 비양심적 태도이다. 셋째, 요행심이다. 설마 이 일이 발각될까, 이까짓 것쯤 하는 얇은 마음이다. 넷째, 무식함이다. 남의 것을 인용할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 모르는 무지한 행동이다.
　사실 연구를 가르치면서 `인용'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가르치는가? 인용은 어떻게 할 수 있고, 얼마만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인용했음을 어떻게 밝혀야 하는지 학계에 합의된 기준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욕심, 게으름, 요행심은 개인이 고쳐야 할 과제로 치더라도 `인용의 방법과 범위'에 관해서 만큼은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겠다.

*지적소유권 보호돼야

　학문하는 자세의 기본은 정직이기 때문이다. 학부에서부터 남의 글로 유려하게 짜깁기를 한 보고서보다는 모자라지만 독창적인 자기 생각을 넣은 보고서를 더 인정하도록 해야한다. 연구방법 교과목에서는 인용의 방법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가르치도록 하는데, 이를 위해 합의된 기준이 필요하다면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논문발표시 도용이 발각되면 책임을 묻는 지적소유권 보호체계도 수립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노력한 만큼 얻은 결과를 기꺼워할 줄 아는 당당함을 강화해야 하겠다.
　간호학의 발전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연구를 강조하고 있는 이 시점, 진정한 학문 발전의 바탕이 되는 정직을 되새겨보도록 하자.

임숙빈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