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4-04 오전 10:32:09

　어느 날 뜻밖의 제의가 들어왔다. 병원에서 SBS 메디컬 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를 촬영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 참여하기로 했다.

　내가 한 일은 수술 장면을 세팅하고 교육시키는 것이었다. 수술 장면에 대한 내용을 파악한 후 필요한 기구와 재료들을 준비하고, 의사 출신인 보조작가와 자문의사와 함께 수술 장면을 만들었다. 연기자들에게는 멸균영역에서 주의할 점, 수술기구의 이름과 사용법 등에 대해 설명했다.

　두 가지 수술 장면을 찍는 데만 15시간이 넘게 걸렸고, 심장수술 같은 경우 수술 장면 한 컷을 18시간씩 찍었다. 모두들 집중력도 떨어지고 체력 소모가 컸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스텝들과 연기자들은 촬영에 돌입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찬 모습을 보였다.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 자신들도 힘들 텐데 촬영장 분위기에 활기를 불어넣으려고 애쓰는 모습들을 보면서, 처음 수술실 간호사를 시작했을 때 내 모습을 떠올리게 됐다. 분명 나도 저런 열정과 패기를 가지고 시작했을 텐데… 지금의 모습을 반성해 보게 됐다.

　특히 드라마 스텝들과 연기자들은 인체 조직과 장기 모형, 수술할 때 나오는 많은 피들을 보면서 매우 놀라워했다.

　“어떻게 이런 걸 보고 만지고 나서 밥을 먹을 수 있냐”며 기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 모두들 “나는 아파서 수술하는 일이 없도록 건강관리를 잘 해야지”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니 나는 수술이라는 것에 대해 어느새 너무 무뎌져 있는 것이 아닌가,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 큰 사건인 수술을 너무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수술 전 환자 입장에서 좀 더 따뜻하게 대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를 찍으면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직업의식과 프로정신 그리고 열정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수술실 간호사로서 내 자신을 재무장하는 시간이 됐다.

이설희(건국대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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