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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석면 탈크 파동이 남긴 교훈
송진식(경향신문 기자)
기사입력 2009-04-22 오전 09:42:05

-식·의약품 안전사고 징크스 걱정 대형사고 일정 주기로 발생
-무엇을 먹느냐 보다 어떻게 먹느냐 안전한 먹거리 보장되는 세상 돼야
식품·의약품을 담당하는 기자들 사이에선 `2년 징크스'란 게 있다. 굵직한 식·의약품 관련 안전사고가 2년 가량 주기로 터진다는 말이다. 2004년부터 지난해까지 차례로 PPA감기약 파동, 기생충 김치,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다. 워낙 사건의 파장이 크고 관심도 많은 사안이라 이를 보도하는 기자들도 사건 관계자들 만큼이나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 흐름을 보면 이 징크스를 대폭 앞당겨야 할 것 같다. 작년 3월 이른바 `쥐머리 새우깡' 사고가 터지며 중국에 있는 국내 기업들의 제조공장 위생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6개월 뒤인 9월에 중국발 멜라민이 터졌고 다시 6개월 뒤인 올 3월 `탈크 파동'이 불거졌다. 흐름대로라면 `6개월 징크스'가 돼야 맞다. 기자들은 벌써부터 다가올 9월이 두렵다.
대형 식·의약품 사고가 과거보다 자주 벌어지는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우선 국민들이 갈수록 안전·위생 문제에 민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무엇을 먹느냐'라는 양적 관점에서 `어떻게 먹느냐'라는 질적 관점으로 식습관이 변했다. 멜라민 파동 후 식약청에 들어온 식품관련 신고는 20배 이상 늘었다.
반대로 그만큼 우리가 안전·위생문제에 둔감했다는 뜻도 된다. 그 결과 식·의약품에 대한 전반적인 관리체계에 대한 허점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고 있다. 식약청은 매번 늑장대응 문제로 질타를 받고, 제조업체들의 도덕성 문제에 대한 비난은 끊이지 않는다. 그럴 때마다 국민들 뱃속에는 유해물질들이 쌓여만 간다.
석면성분이 들어간 탈크를 사용한 의약품 1122개에 대해 식약청이 판매금지·회수 명령을 내린 것을 놓고 여기저기서 말이 많이 나온다. 쟁점은 크게 위해성이 없는데도 판금·회수해야 하는가의 문제, 의약품 폐기·환불 등으로 제약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막대한 금전적 손해 문제 두 가지다.
석면은 국제암연구소(IARC)에서 지정한 1급 발암물질이다. 석면이 포함된 탈크 역시 1급 발암물질이다. 탈크 내 석면은 대략 전체 성분의 2~4% 가량이라는 국내 시민단체의 연구를 감안하면 `석면 탈크'가 그리 위험해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중앙약사심의위원회는 이를 근거로 의약품에 포함됐을 석면의 양은 극히 미량이라 먹어도 위해성이 거의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량의 석면을 흡입하거나 섭취해도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다. 특히 석면을 먹었을 경우에 대해 제대로 연구한 논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앙약심위도 안전하다는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그런 점에서 판금명령을 내린 식약청의 이번 판단은 옳았다고 본다. 석면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국민에게 `위해성이 별로 없다'는 말은 `먹어도 안 죽는다'는 말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먹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석면 탈크를 가지고 약품을 만드는 노동자들은 가장 치명적인 `석면 흡입' 문제에 노출돼 있다. 약품을 다루는 의사·약사·간호사 등을 포함한 모든 병원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다. 아기에게 약품을 갈아서 먹이는 엄마와 가루약을 먹는 아기도 위험하다.
몇몇 제약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금전적 손실이 큰 것을 놓고 제약사에만 책임을 떠넘긴다는 비판도 있다. 다 맞는 말이다. 법대로 만들었을 뿐인데 이제 와서 일방적으로 손실을 보라면 억울하지 않을 사람 없다. 1차적인 책임은 법 규정을 제대로 하지 못한 정부에 있다.
그러나 제약사들도 책임져야 할 부분은 있다. 리스크(Risk) 관리 문제다. 문제의 석면 탈크 말고도 3배나 비싼 일본 탈크를 써서 약품을 만들어 온 제약사들도 많다. 안전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원료관리는 제조업체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식당 주인이 오늘 갓 들어온 야채가 싱싱한지 살피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는 식품을 포함, 뭐든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만드는 업체가 가지는 숙명과도 같다. 제품 회수라는 값비싼 수업을 치른 만큼 제약사들도 이번 기회에 의약품 생산체계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만들긴 쉬워도 깨기는 어려운 것이 징크스다. 적어도 `먹고 사는 것'만은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