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2-05-22 오후 13:36:30

◇노년기 삶의 질 결정짓는 문제는 건강
◇전문성 갖춘 간호사의 따뜻한 보살핌 필요

◇노인환자 눈높이에서 마음으로 이해해야
◇고령사회 맞아 간호사들의 큰 활약 요구돼

`간호'가 얼마나 섬세하고 전문적인 일인지, 의외의 상황에서 깨닫게 된 일이 최근 있었다.
　
한·스웨덴 수교 53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을 공식 국빈 방문하게 되는 스웨덴 국왕 부부를 인터뷰하는 자리에서였다.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과 실비아 왕비는 오는 5월 29일 방한하는데, 스웨덴 외교부 초청으로 미리 스톡홀름까지 날아가 지난 16일 왕궁에서 국왕 내외를 만났다.
　
검은색 정장 탓인지 다소 딱딱한 인상의 구스타프 국왕은 한국과 스웨덴 양국의 우호 관계가 앞으로 한층 깊어질 것이며, 정보통신·친환경 기술과 의학 분야 등에서 강력한 협력관계를 증진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상대로 교과서 같은 답변이 이어지면서 기자의 실망감이 쌓여갈 무렵, 실비아 왕비의 얘기가 귀에 쏙 들어왔다. 어린이 권익 보호와 노인 복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활발한 지원 활동을 벌여온 실비아 왕비는 스웨덴에서 국왕보다 훨씬 인기가 높다고 알려져 있다.
　
“알츠하이머 환자들은 어두운 색을 무서워해요. 집에 감청색 카펫을 깔아두면 암흑의 늪이나 웅덩이로 착각해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알츠하이머 환자의 병실은 오렌지색처럼 밝고 따뜻한 느낌의 색으로 꾸며야 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식사할 때도 여러 음식을 한 상에 차려 놓으면 안 됩니다.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인식할 수 없는 환자를 위해, 한 번에 한 가지씩 음식도 나눠서 줘야 하지요.”
　
실비아 왕비는 14년 전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를 앓았다고 했다. 매년 노벨 의학상 수상자를 결정하는 유럽 최고 수준의 의과대학 카올린스카와 부속병원이 있는 스웨덴에서 왕비의 어머니는 현대의학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진료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왕비는 어머니를 돌보는 동안, 환자 보호자 입장에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당시만 해도 알츠하이머 환자를 어떻게 보살펴야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는 간호사들이 부족했던 탓이다.
　
“알츠하이머 환자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고, 환자의 마음으로 상황을 인식하는 간호가 필요했어요.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간호사들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졌죠.” 당시를 기억하는 것이 아직도 쉽지만은 않은 듯, 일흔을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우아한 기품이 흐르는 왕비의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그렇게 어머니를 잃은 후, 왕비는 알츠하이머 연구를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 간호사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노인간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일본 간호전문가들을 초청해 스웨덴 간호사들을 교육시키는 한편, 온라인 교육프로그램도 운영해왔다. 지금은 알츠하이머 환자를 전문적으로 돌볼 수 있는 간호사들이 많아져, 오히려 다른 나라 간호사들을 교육시키기도 한다고 왕비는 말했다.
　
“알츠하이머 환자처럼 자신의 상태를 제대로 표현할 수도 없고 일반인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경우, 의료진은 환자 보호자와 한 팀이 되어서 환자를 돌봐야만 합니다. 환자 가족의 얘기를 귀담아 듣고 환자 상태를 정확히 파악해 치료에 반영할 수 있는 사람은 간호사밖에 없어요.”
　
왕비는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한국에서도 노인환자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전문적으로 돌볼 수 있는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면서 “스웨덴과 한국의 협력이 절실한 또 하나의 분야”라고 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제도를 갖고 있는 스웨덴에서도, 역시 대다수 노인들은 병을 앓는다. 그리고 아픈 노인들이 어떤 수준의 의료적 보살핌을 받는가는 노년기 삶의 질을 결정짓는 문제라는 것을 스웨덴 왕비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절감했던 것이다.
　
특히 인간적인 보살핌의 따뜻한 손길 없이는 눈부신 현대의학도 차가운 기술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이다. 또한 따뜻한 보살핌은 교육과 훈련을 통해 길러진 전문성이 바탕이 돼야만 제 역할을 한다는 것도.
　
스웨덴은 현재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인구의 18%를 차지하고 있고, 한국은 11% 수준이다. 2026년이면 한국도 노인 인구 비율이 20%를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 세계적 수준의 전문성을 갖춘 한국의 간호사들이 더 큰 활약을 해야 하는 시기가 세계 최고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