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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간호문학상 소설 당선
봄의 정원으로 오라.
기사입력 2009-01-06 오전 10:01:44
- 이 혜 린
우리집앞에 피어있는 백합이 피기 시작할때쯤이면 나는 여기 없을것이다. 내가 이곳에 왔을땐 정말 환하게 피어있었다. 저렇게 식물들이 꽃을 피울때마다 느끼는것이 있다.
정말 분명한것은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것이다. 세상에 불변이란 없다. 아름다움도 늙게 되고 유행도 변하고, 화폐의 가치도 변하고, 10년후 유망직업도 변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나는 길어봤자 60년정도밖에 시간이 없다는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이란것은 내가 말안해도 알겠지.
오늘 토미의 작품을 도와주고 토미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로 먹고 살수있겠냐고, 미래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어쩌면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것이라고. 우린 2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은 사람들이 그냥 만들어 낸것이며, 운명이나 팔짜 라는것도 사람들이 끼워맞춘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은 사람이 타고난 부정적인 시각을 이겨내고 하고 싶은것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산다는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헬렌켈러가 그랬다. 안전은 미신이라고. 사실 나는 용기가 나지 않을때도 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아주 오랜기간동안 희생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나는 취직을해서 자랑스러운딸이 되어야 한다. 결혼도 해야하고, 그럴듯한 가정에 적당히 일하면서 적당히 시집에도 보태면서, 주말엔 아기들과도 놀아줘야겠지.
하지만 내가 그일을 하려고 이 지구에 떨어진걸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
어머니에게도 묻고 싶다. 하지만 만약 엄마에게 이질문을 하면 나는 아주 못된딸이 된다. 왜냐면 이질문자체가 여태껏 살아온 엄마의 삶을 제로로 만드는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말하고 싶다. 엄마, 엄마의 인생을 다시 찾으세요.
오늘도 나는 일을마치고 버스정류장에서 36번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대로라면 오늘 저녁반찬거리, 공과금 걱정을 하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삶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최대 문제를 지금 45살에 하고 있는것이다. 36번을타려다가 지하철역으로 간다. 내가 다녔던 학교인 여대를 가기위해 2호선을 타고 신촌으로 갔다.
왜 모교로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그래도 청춘의꿈을 다시 생각해낼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학교안은 꽤 많이 바뀌었다. 상업적으로 캠퍼스안에 상가도 들어섰고, 도서관도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나무며, 건물이며, 그대로 였다.
캠퍼스를 걸으면서 제일먼저 생각이 났던것은, 수진이 아빠, 김지훈이었다. 대학교 3학년때 갔던 엠티에서 만난, 나보다 2살많았던 사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여서 처음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알수록 로맨틱한 면이 있어서 빠져들게 만들었던 사람, 3년 교제를 했지만, 서로 결혼 생각은 없었고, 서로의 집에선 교제한다는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진아빠가 졸업후 항공사에 기장으로 취직하게 되었고, 트레이닝 때문에 몇 달을 만날수가 없었다. 몇 달을 못보고 오랜만에 만난 그날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날밤, 나는 임신할것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섹스를 했고, 정말 예감은 적중했다.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절망적이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수진아빠에게 처음 임신 사실을 말했을때 한말은 ‘설마..’ 이것이었고 이렇게 된거 우리 결혼하자고 말한건 나였다. 수진아빠의 의사에 상관없이 나는 이미 갈때까지 가보자라는 심정이었다. 수진아빠의 직업 특성상 우리는 자주 떨어져 있었다. 나의 삶은 그가 돌아올날이 기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불이나 가구를 바꾸더라도 그가 돌아와서 봤을때 기뻐할만한것을 고르고 음식을 만들어도 호텔 음식보다 맛있어야 할텐데 라는 부담감으로 요리를 하곤 했다.
그가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왔을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변화된 나의 모습과 집안의 모습을 보고 칭찬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바뀐것을 눈치를 못챌때도 많았고, 내가 슬쩍 운을 띄워도 그냥 그저그래 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별 감흥없이 받아들이는 그를 보면서 저이는 원래 무심하니까 내가 이해하자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갔다. 한달의 반정도를 외국이나 하늘에 있는 그런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것을 알게 된건 수진이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수진아빠는 나에게 이혼을 요구 하였다. 애인은 젊은 동료승무원이었는데 이혼을 해준다면, 그사람은 나에게 위자료를 넘겨주고 나머지돈을 가지고 캐나다로 떠날것이라고 했다. 그에 눈에서 새로운 미래에 들뜬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나는 캐나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얼마나 좋은지 몰랐지만, 예전에 수진아빠가 캐나다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칭찬했던것이 기억이 났다. 그렇게 그는 기장이란 직업을 버리고, 정원사로 캐나다에 취업이민하여 들어갔고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학원에 강사로 들어갔다.
꿈이란것을 찾기 위해 왔는데 전남편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다니. 10년이 지나고 20년이지나서 이곳에 와서도 전남편이 생각난다면....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20대, 그 당시에도 그 나름의 고민이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는 가정을 이루면서 자아를 찾아야 겠단 생각 뿐이었던것 같다. 가정주부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가정주부를 하며 지내야 겠단 생각을 한것이다. 얼른 남은 시간들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서울에서 많은 나날을 보냈다. 지구라는것이 존재하지만, 서울에서만 살고 서울사람만 만나는 나에게 지구는 존재하지 않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것은 재탄생이다.
나의 청춘 시절을 모두 같이 보낸 그도, 나의 인생의 전부였던 수진이도 결국 다 떠났다.
혼자라는것에 섭섭해 할필요가 없다. 그 시절 혼자가 아니었던 때에도 외로웠던건 마찬가지 아니던가. 세상에 영원이란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나혼자 남게 되는 순간을 위해서 나는 내 방향을 찾아야한다. 아니 방향을 찾지 않아도 좋다. 자유로움속에 둥둥 떠다니다 그렇게 가도 좋을것 같다.
우선 너덜너덜 해진 나의 몸과 마음에 영양제를 줘야 한다. 연애든 여행이든 즐거운 감정이라는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의 삶에서 내가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선택할수 있는 기로에 선것 말이다.
밤9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도착했다. 이제 조금있으면 6월이다.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다. 반팔과 긴팔이 반씩 섞인 무리들을 지나서 집으로 도착했다. 내일은 블로그에서 봤던 카페를 찾아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나는 수진이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평일인데도 홍대 거리는 시끄러웠다. 수진이가 있을 카페앞에서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내 예상대로 수진이는 안에 있었다. 잡지에서 본것같은 인도여자들이 입을법한 보라색과 레몬색이 뒤엉켜진 치마를 입고 목에는 구슬이 꿰어진 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금색 파마머리에 대조를 이루는 검은 색 아이라인이 발린 수진이의 놀란 눈은 금새 다시 가라앉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들어와요.”
눈과는 다르게 립스틱도 안바른 메마른 입으로 나를 데리고가 카페 주인에게 소개시켰다.
“저희 엄마에요.”
카페주인은 불편한감 없이 나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곤 수진이에게 말했다.
“와인한잔 줄까?”
“네, 두잔 가득주세요.”
내 앞에있는 수진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빛이 강했다. 생동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평안이 느껴졌다.
“여기, 좋아?”
“응, 마음이 편하니까, 더 창작도 잘되고, 만족 스러워. 행복해.”
행복해라고 직접 입밖으로 내뱉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조금 놀랬다. 3년간 하루 5시간씩 자고 들어간 대학 입학식때도 듣지 못한 말. 행복해.
“엄마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엄만 내가 세상 끝에 있어도 찾아올거잖아. 인연의 끈은 그렇잖아. 아니 하늘의 끈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내앞의 체리색 와인의 파동을 지켜보다가 입을 땠다.
“엄마..생각해봤어.. 부끄럽지만, 엄만 엄마가 뭘원하는지 몰라. 뭘하고 싶은지, 그런쪽으로 너무 무뎌져서 잘 모르겠어. 그래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걸 생각해봤어. 엄마 떠나려고 그래.”
“잘생각했어.”
“1년동안 유럽돌고 올까싶어. 안되면 반년이라도.. ”
“만약에 말이야.. 혹시 거기서 엄마가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여태껏 살아온 삶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받을수 있을거라고믿어. 거기서 어떤 새로운것을 꽉 채워도 좋지만 마음속에 넓은 여백을 만들어와도 좋을것 같아.”
“그래.. 엄마 이만 일어나서 가볼게.”
“엄마 잠깐만.”
나가려는 나의 팔을 붙잡고 수진이가 다이어리안에 있는 엽서 한 장을 빼서 주었다. 에펠탑그림 뒤에 적힌 시 한소절.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게를 나오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직선으로 걸었다. 집으로 도착하고 이것저것 필요한것을 생각해보았다. 여행가방도, 비행기표도, 여권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나 혼자 계획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필요한것들을 살펴보고 재진이의 사회과부도를 꺼내서 지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직서. 순간 고민을 했다. 계속 사직을 할지, 기간을 두고 잠깐만 그만둘것인지..그건 미자와 의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6월1일,
나는 사직서를 미자에게 내밀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둬야겠다고.
“왜?”
미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대물었다.
“나 여행갈꺼야. 좀 오랫동안..”
“여행? 무슨여행이길래..사직서야? 얼마나?”
미자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놀란 표정이 더 깊어졌다. 그럴만한것이 그녀가 작년에 나에게 동남아 패키지 가자고 했을때 귀찮다고 거절했었기 때문이다.
“한..6개월에서 1년?”
“대단하다.”
그때 동료 선생이 들어왔다.
“우리 밤에 술한잔하자, 괜찮지?”
미자가 선생의 눈치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술한잔 하자고 했다.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학원에서 조금만 나오면 번화가가 있다. 대형마트와 그주변 술집들. 우리는 멀티플라자 9층에 위치한 캐쥬얼한 맥주집에 들어왔다. 데낄라를 시킨 미자를 보고 나는 놀랐다. 왜냐면 미자는 술을 잘 못마시기 때문이다. 같이 술을 마신 횟수를 손에 셀수도 있다.
데낄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학부모이야기, 동료선생이야기, 자신의 동생이야기..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 분명히 아는 이야기를 수다로 채울생각으로 불러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때 였다.
“저기요, 여기 데낄라한잔 더 주세요.”
조금 취기가 엿보이는데 한잔더 시킨 미자. 한잔 들이키고 내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한다. 분명 뭔가 할말이 있는것같았다.
“그래.. 다시 돌아와선 뭐할거야?”
“모르겠어. 그건 그때 생각해봐야지.”
“요새..수진이아빠한테 연락안와?”
생각해보니 연락안온지 오래됐다. 나에게 연락은 잘안한다. 재진이에게 개인적으로 한다.
“너.. 내가 왜 결혼안한지 알아?”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내가 생각한 답을 말해도 될지 고민됐다. 친한친구의 이혼? 미자 부모님, 당신들의 불화? 이런것들로 결혼에 대한 환상에 깨졌겠지.
내가 말하려는 찰라에 미자가 입을땠다.
“사실.. 나 여자로써 살수가 없어.”
“무슨말이야?”
“여자는 엄마로써 있을때가 가장 위대하다고하잖아. 나 아기를 가질수가 없어. 고등학교까지 월경이 안나오는거야. 산부인과 가서 검사를 했는데.. 원발성무월경이라더라. 선천적으로 월경을안하는거래. 월경을 안하면애를 못가지잖아. 그럼 결혼을 못하는거잖아. 뭐 요새 젊은 사람들은 애기를 안가지고 결혼생활도 한다지만 말이야.”
“아...”
“너, 나 우울증 있는거 알지? 그거 고등학교때부터 생긴거야. 모든 것에 예민해 졌어. 웃음도 잘안나고, 대학들어와선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도 안생겼지. 어짜피 비극일테니까, 시작도 하지말자, 혹시나 정말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 그때 감당안될테니까. ”
“그래도 몇 번 사겼지 않니?”
“짧게 두 번정도? 뭐... 나머진 솔직히 거짓말이었어. 왜냐면, 안사귀면 동성애자란 소문날수도 있잖아.”
미자가 자신의 발상에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했다.
“고마워. 이제라도 말해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얼마나 부족했으면 여태껏 숨기고 살았니.”
“아니야,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데낄라를 한모금 더 마신후 미자가 계속 말했다.
“고백하자면, 너가 이혼할 때, 자식들이 속썩일때, 나는 너를 위로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 했었어. 한편으로는 그럼 안된다고 생각은 했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여행 가겠다는 결심, 잘했어. 사직서는 넣어둬. 너 올때까지 아르바이트 교사를 구하던지 할테니까.”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씽긋 웃으며 그녀의 잔에 건배를 청했다.
술에 취한 미자에게 대리운전을 연결해주고 나는 약국을 찾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머리가 깨질것같았다. 시간이 늦어서 주변에 약국은 문을 다 닫았다. 저기 보이는 대형마트 안에 약국은 열었겠지. 마트로 들어갔다.
약국으로 가는 통로에 보이는 잡화코너, 이쁜 갈색 캐리어백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 흔한 캐리어백도 없었다. 여행티켓보단 이게 우선이다. 나는 한손에 캐리어, 한손에는 두통약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꾸러미를 가지고 있다. 한두가지 꾸러미가 아니다. 밝히지않는 꾸러미도 있고 일부러 펼쳐 보여주는 꾸러미도 있다. 보여주기 위한 내용만 들어있는 이 꾸러미는 아무리 펼쳐서 보여줘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매우 단단하고 질기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것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두꺼운 꾸러미속에 든 이야기는 그저 내보내기 위한것이니까. 아주 깊은곳에 숨겨둔 한천같은 얇은 막으로 된 조심하지 않으면 터져서 슬픔이 될 이야기 꾸러미가 되려 더 중요하다.
나는 이제 이 얇디 얇은 여러 꾸러미들을 몽땅 두꺼운 꾸러미에 담아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 캐리어를 잡은 나의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돌돌 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에 나의 두려움은 점점 줄어들고 묘한 설레임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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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앞에 피어있는 백합이 피기 시작할때쯤이면 나는 여기 없을것이다. 내가 이곳에 왔을땐 정말 환하게 피어있었다. 저렇게 식물들이 꽃을 피울때마다 느끼는것이 있다.
정말 분명한것은 우리는 언젠가는 죽는다는것이다. 세상에 불변이란 없다. 아름다움도 늙게 되고 유행도 변하고, 화폐의 가치도 변하고, 10년후 유망직업도 변한다...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이 없다. 나는 길어봤자 60년정도밖에 시간이 없다는것이다. 정말 짧은 시간이란것은 내가 말안해도 알겠지.
오늘 토미의 작품을 도와주고 토미에게 말했다. 내가 이걸로 먹고 살수있겠냐고, 미래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어쩌면 미래란 존재하지 않는것이라고. 우린 2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구분은 사람들이 그냥 만들어 낸것이며, 운명이나 팔짜 라는것도 사람들이 끼워맞춘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은 사람이 타고난 부정적인 시각을 이겨내고 하고 싶은것을 하며 최선을 다해 산다는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헬렌켈러가 그랬다. 안전은 미신이라고. 사실 나는 용기가 나지 않을때도 있다. 엄마는 나를 위해 아주 오랜기간동안 희생했다. 시나리오대로라면 나는 취직을해서 자랑스러운딸이 되어야 한다. 결혼도 해야하고, 그럴듯한 가정에 적당히 일하면서 적당히 시집에도 보태면서, 주말엔 아기들과도 놀아줘야겠지.
하지만 내가 그일을 하려고 이 지구에 떨어진걸까?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다. 이 질문.
어머니에게도 묻고 싶다. 하지만 만약 엄마에게 이질문을 하면 나는 아주 못된딸이 된다. 왜냐면 이질문자체가 여태껏 살아온 엄마의 삶을 제로로 만드는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말하고 싶다. 엄마, 엄마의 인생을 다시 찾으세요.
오늘도 나는 일을마치고 버스정류장에서 36번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대로라면 오늘 저녁반찬거리, 공과금 걱정을 하겠지만, 내 머릿속에는 정말 내가 원하는삶이 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인생의 최대 문제를 지금 45살에 하고 있는것이다. 36번을타려다가 지하철역으로 간다. 내가 다녔던 학교인 여대를 가기위해 2호선을 타고 신촌으로 갔다.
왜 모교로 가고 싶다고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캠퍼스를 거닐다보면 그래도 청춘의꿈을 다시 생각해낼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학교안은 꽤 많이 바뀌었다. 상업적으로 캠퍼스안에 상가도 들어섰고, 도서관도 리모델링했다. 하지만 나무며, 건물이며, 그대로 였다.
캠퍼스를 걸으면서 제일먼저 생각이 났던것은, 수진이 아빠, 김지훈이었다. 대학교 3학년때 갔던 엠티에서 만난, 나보다 2살많았던 사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보여서 처음엔 별 감정이 없었는데 알수록 로맨틱한 면이 있어서 빠져들게 만들었던 사람, 3년 교제를 했지만, 서로 결혼 생각은 없었고, 서로의 집에선 교제한다는것도 모르고 있었다. 수진아빠가 졸업후 항공사에 기장으로 취직하게 되었고, 트레이닝 때문에 몇 달을 만날수가 없었다. 몇 달을 못보고 오랜만에 만난 그날밤, 왜 그랬는지 몰라도 그날밤, 나는 임신할것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섹스를 했고, 정말 예감은 적중했다.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절망적이지도 기쁘지도 않았다.
수진아빠에게 처음 임신 사실을 말했을때 한말은 ‘설마..’ 이것이었고 이렇게 된거 우리 결혼하자고 말한건 나였다. 수진아빠의 의사에 상관없이 나는 이미 갈때까지 가보자라는 심정이었다. 수진아빠의 직업 특성상 우리는 자주 떨어져 있었다. 나의 삶은 그가 돌아올날이 기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불이나 가구를 바꾸더라도 그가 돌아와서 봤을때 기뻐할만한것을 고르고 음식을 만들어도 호텔 음식보다 맛있어야 할텐데 라는 부담감으로 요리를 하곤 했다.
그가 비행을 마치고 집으로 왔을때 나는 그의 눈치를 살폈다. 변화된 나의 모습과 집안의 모습을 보고 칭찬해주길 바랬다. 하지만 그는 바뀐것을 눈치를 못챌때도 많았고, 내가 슬쩍 운을 띄워도 그냥 그저그래 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별 감흥없이 받아들이는 그를 보면서 저이는 원래 무심하니까 내가 이해하자 라고 스스로 다독이며 살아갔다. 한달의 반정도를 외국이나 하늘에 있는 그런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는것을 알게 된건 수진이가 중학교 3학년때였다.
수진아빠는 나에게 이혼을 요구 하였다. 애인은 젊은 동료승무원이었는데 이혼을 해준다면, 그사람은 나에게 위자료를 넘겨주고 나머지돈을 가지고 캐나다로 떠날것이라고 했다. 그에 눈에서 새로운 미래에 들뜬 기분을 느낄수 있었다. 나는 캐나다에 한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얼마나 좋은지 몰랐지만, 예전에 수진아빠가 캐나다가 제일 살기 좋은 나라라고 칭찬했던것이 기억이 났다. 그렇게 그는 기장이란 직업을 버리고, 정원사로 캐나다에 취업이민하여 들어갔고 나는 자존심을 버리고 친구가 원장으로 있는 학원에 강사로 들어갔다.
꿈이란것을 찾기 위해 왔는데 전남편이 가장 먼저 생각이 나다니. 10년이 지나고 20년이지나서 이곳에 와서도 전남편이 생각난다면....비극이란 생각이 들었다. 20대, 그 당시에도 그 나름의 고민이 있었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는 가정을 이루면서 자아를 찾아야 겠단 생각 뿐이었던것 같다. 가정주부하는 어머니를 보면서 나도 가정주부를 하며 지내야 겠단 생각을 한것이다. 얼른 남은 시간들은 나를 위한 시간으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태껏 서울에서 많은 나날을 보냈다. 지구라는것이 존재하지만, 서울에서만 살고 서울사람만 만나는 나에게 지구는 존재하지 않는거나 마찬가지이다. 지금 이 순간 필요한것은 재탄생이다.
나의 청춘 시절을 모두 같이 보낸 그도, 나의 인생의 전부였던 수진이도 결국 다 떠났다.
혼자라는것에 섭섭해 할필요가 없다. 그 시절 혼자가 아니었던 때에도 외로웠던건 마찬가지 아니던가. 세상에 영원이란것은 없다는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정말 마지막 순간에 나혼자 남게 되는 순간을 위해서 나는 내 방향을 찾아야한다. 아니 방향을 찾지 않아도 좋다. 자유로움속에 둥둥 떠다니다 그렇게 가도 좋을것 같다.
우선 너덜너덜 해진 나의 몸과 마음에 영양제를 줘야 한다. 연애든 여행이든 즐거운 감정이라는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 정말 오랜만이다. 나의 삶에서 내가 아무런 조건을 따지지 않고 선택할수 있는 기로에 선것 말이다.
밤9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도착했다. 이제 조금있으면 6월이다. 조금씩 더워지기 시작한다. 반팔과 긴팔이 반씩 섞인 무리들을 지나서 집으로 도착했다. 내일은 블로그에서 봤던 카페를 찾아가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서 나는 수진이를 만날 수 있을것이다.
평일인데도 홍대 거리는 시끄러웠다. 수진이가 있을 카페앞에서 망설이다가 문을 열었다. 내 예상대로 수진이는 안에 있었다. 잡지에서 본것같은 인도여자들이 입을법한 보라색과 레몬색이 뒤엉켜진 치마를 입고 목에는 구슬이 꿰어진 큰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금색 파마머리에 대조를 이루는 검은 색 아이라인이 발린 수진이의 놀란 눈은 금새 다시 가라앉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나에게 다가왔다.
“엄마, 들어와요.”
눈과는 다르게 립스틱도 안바른 메마른 입으로 나를 데리고가 카페 주인에게 소개시켰다.
“저희 엄마에요.”
카페주인은 불편한감 없이 나에게 웃으면서 인사하곤 수진이에게 말했다.
“와인한잔 줄까?”
“네, 두잔 가득주세요.”
내 앞에있는 수진이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눈빛이 강했다. 생동감이 느껴지면서 동시에 평안이 느껴졌다.
“여기, 좋아?”
“응, 마음이 편하니까, 더 창작도 잘되고, 만족 스러워. 행복해.”
행복해라고 직접 입밖으로 내뱉는것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조금 놀랬다. 3년간 하루 5시간씩 자고 들어간 대학 입학식때도 듣지 못한 말. 행복해.
“엄마가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는지 궁금하지 않아?”
“엄만 내가 세상 끝에 있어도 찾아올거잖아. 인연의 끈은 그렇잖아. 아니 하늘의 끈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내앞의 체리색 와인의 파동을 지켜보다가 입을 땠다.
“엄마..생각해봤어.. 부끄럽지만, 엄만 엄마가 뭘원하는지 몰라. 뭘하고 싶은지, 그런쪽으로 너무 무뎌져서 잘 모르겠어. 그래서 지금 당장 하고 싶은걸 생각해봤어. 엄마 떠나려고 그래.”
“잘생각했어.”
“1년동안 유럽돌고 올까싶어. 안되면 반년이라도.. ”
“만약에 말이야.. 혹시 거기서 엄마가 답을 얻지 못하더라도, 여태껏 살아온 삶에 대해 충분히 보상을 받을수 있을거라고믿어. 거기서 어떤 새로운것을 꽉 채워도 좋지만 마음속에 넓은 여백을 만들어와도 좋을것 같아.”
“그래.. 엄마 이만 일어나서 가볼게.”
“엄마 잠깐만.”
나가려는 나의 팔을 붙잡고 수진이가 다이어리안에 있는 엽서 한 장을 빼서 주었다. 에펠탑그림 뒤에 적힌 시 한소절.
봄의 정원으로 오라.
이곳에 꽃과 술과 촛불이 있으니
만일 당신이 오지 않는다면
이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리고 만일 당신이 온다면
이것들이 또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게를 나오고 나는 아무생각없이 직선으로 걸었다. 집으로 도착하고 이것저것 필요한것을 생각해보았다. 여행가방도, 비행기표도, 여권도 아무것도 없었다. 모든 것을 나 혼자 계획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여행 카페에 가입해서 필요한것들을 살펴보고 재진이의 사회과부도를 꺼내서 지도를 살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직서. 순간 고민을 했다. 계속 사직을 할지, 기간을 두고 잠깐만 그만둘것인지..그건 미자와 의논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6월1일,
나는 사직서를 미자에게 내밀었다.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만둬야겠다고.
“왜?”
미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에게 대물었다.
“나 여행갈꺼야. 좀 오랫동안..”
“여행? 무슨여행이길래..사직서야? 얼마나?”
미자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놀란 표정이 더 깊어졌다. 그럴만한것이 그녀가 작년에 나에게 동남아 패키지 가자고 했을때 귀찮다고 거절했었기 때문이다.
“한..6개월에서 1년?”
“대단하다.”
그때 동료 선생이 들어왔다.
“우리 밤에 술한잔하자, 괜찮지?”
미자가 선생의 눈치를 보며 정말 오랜만에 술한잔 하자고 했다. 몇 년만인지 모르겠다.
학원에서 조금만 나오면 번화가가 있다. 대형마트와 그주변 술집들. 우리는 멀티플라자 9층에 위치한 캐쥬얼한 맥주집에 들어왔다. 데낄라를 시킨 미자를 보고 나는 놀랐다. 왜냐면 미자는 술을 잘 못마시기 때문이다. 같이 술을 마신 횟수를 손에 셀수도 있다.
데낄라를 마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가벼운 이야기부터, 학부모이야기, 동료선생이야기, 자신의 동생이야기.. 나도 다 아는 이야기들.. 분명히 아는 이야기를 수다로 채울생각으로 불러낸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을때 였다.
“저기요, 여기 데낄라한잔 더 주세요.”
조금 취기가 엿보이는데 한잔더 시킨 미자. 한잔 들이키고 내눈을 바라보더니 이내 피한다. 분명 뭔가 할말이 있는것같았다.
“그래.. 다시 돌아와선 뭐할거야?”
“모르겠어. 그건 그때 생각해봐야지.”
“요새..수진이아빠한테 연락안와?”
생각해보니 연락안온지 오래됐다. 나에게 연락은 잘안한다. 재진이에게 개인적으로 한다.
“너.. 내가 왜 결혼안한지 알아?”
진지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내가 생각한 답을 말해도 될지 고민됐다. 친한친구의 이혼? 미자 부모님, 당신들의 불화? 이런것들로 결혼에 대한 환상에 깨졌겠지.
내가 말하려는 찰라에 미자가 입을땠다.
“사실.. 나 여자로써 살수가 없어.”
“무슨말이야?”
“여자는 엄마로써 있을때가 가장 위대하다고하잖아. 나 아기를 가질수가 없어. 고등학교까지 월경이 안나오는거야. 산부인과 가서 검사를 했는데.. 원발성무월경이라더라. 선천적으로 월경을안하는거래. 월경을 안하면애를 못가지잖아. 그럼 결혼을 못하는거잖아. 뭐 요새 젊은 사람들은 애기를 안가지고 결혼생활도 한다지만 말이야.”
“아...”
“너, 나 우울증 있는거 알지? 그거 고등학교때부터 생긴거야. 모든 것에 예민해 졌어. 웃음도 잘안나고, 대학들어와선 남자를 사귀고 싶은 마음도 안생겼지. 어짜피 비극일테니까, 시작도 하지말자, 혹시나 정말 결혼하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 그때 감당안될테니까. ”
“그래도 몇 번 사겼지 않니?”
“짧게 두 번정도? 뭐... 나머진 솔직히 거짓말이었어. 왜냐면, 안사귀면 동성애자란 소문날수도 있잖아.”
미자가 자신의 발상에 스스로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했다.
“고마워. 이제라도 말해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내가 얼마나 부족했으면 여태껏 숨기고 살았니.”
“아니야, 오히려 내가 더 미안해”
데낄라를 한모금 더 마신후 미자가 계속 말했다.
“고백하자면, 너가 이혼할 때, 자식들이 속썩일때, 나는 너를 위로 하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 했었어. 한편으로는 그럼 안된다고 생각은 했어. 하지만..... 어쨌든 간에 여행 가겠다는 결심, 잘했어. 사직서는 넣어둬. 너 올때까지 아르바이트 교사를 구하던지 할테니까.”
나는 고맙다는 말 대신 씽긋 웃으며 그녀의 잔에 건배를 청했다.
술에 취한 미자에게 대리운전을 연결해주고 나는 약국을 찾았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고백에 머리가 깨질것같았다. 시간이 늦어서 주변에 약국은 문을 다 닫았다. 저기 보이는 대형마트 안에 약국은 열었겠지. 마트로 들어갔다.
약국으로 가는 통로에 보이는 잡화코너, 이쁜 갈색 캐리어백이 있다. 그러고보니 나는 그 흔한 캐리어백도 없었다. 여행티켓보단 이게 우선이다. 나는 한손에 캐리어, 한손에는 두통약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우리는 우리만의 이야기꾸러미를 가지고 있다. 한두가지 꾸러미가 아니다. 밝히지않는 꾸러미도 있고 일부러 펼쳐 보여주는 꾸러미도 있다. 보여주기 위한 내용만 들어있는 이 꾸러미는 아무리 펼쳐서 보여줘도 쉽게 찢어지지 않는다. 매우 단단하고 질기다.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 그것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해선 안된다. 두꺼운 꾸러미속에 든 이야기는 그저 내보내기 위한것이니까. 아주 깊은곳에 숨겨둔 한천같은 얇은 막으로 된 조심하지 않으면 터져서 슬픔이 될 이야기 꾸러미가 되려 더 중요하다.
나는 이제 이 얇디 얇은 여러 꾸러미들을 몽땅 두꺼운 꾸러미에 담아 다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싶다. 캐리어를 잡은 나의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돌돌 거리는 캐리어 바퀴 소리에 나의 두려움은 점점 줄어들고 묘한 설레임이 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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