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독자페이지
해외취업 수기 - 사우디 킹파드병원을 다녀와서
기사입력 2001-02-01 오전 11:08:42

2000년 1월 27일. 나는 새로운 꿈을 안고 사우디 아라비아로 향했다. 젯다 지역에 있는 킹파드병원에서 1년간 일하기로 계약을 맺고 떠나는 길이었다. 사우디 취업은 두번째라 그리 두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11개월간의 근무를 무사히 마치고 지난해 말 귀국해 달콤한 휴식을 즐기고 있다.
킹파드병원에 함께 간 한국 간호사는 모두 35명이었다. 우리는 도착 후 곧바로 4주간의 교육에 들어갔다. 기초적인 아랍어와 아랍문화, 병원 조직과 관리 체계, 화재 대피요령에 대해 배웠고 투약, 상처관리, 각종 검사전 간호, 심폐소생술 등 기본간호기술도 점검받았다. 교육은 매우 철저하고 엄격하게 진행됐으며 마지막 날에는 시험도 치렀다.
한국 간호사 경력이 15년차인 나는 내과병동에 배치됐다. 병상 수는 25개였으며 간호사 1명이 데이 때는 환자 5명을, 이브닝과 나이트 때는 8명을 맡았다. 거의 매일 심폐소생술을 할 정도로 중환자가 많았다.
한국과는 달리 간호사들은 병실에서 직접 환자를 보면서 인계를 했고, 환자가 특수검사를 받으러 갈 때는 반드시 간호사가 동행했다. 특히 모든 의료비가 무료라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MRI, CT 등 특수검사와 항암제, 알부민 같은 고가 약품이 모두 무료였다.
환자들과는 기본적인 아랍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의사나 동료 간호사들과는 영어로 대화했다.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는 대부분 필리핀, 인도, 중국인 등이었고 환자들은 외국인과 생활하는데 잘 적응이 되어 있었다.
사우디에도 간호대학은 있지만 실제 간호사로 일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내가 근무할 당시 마이모나 간호사가 사우디인으로는 최초로 간호부장에 임명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기숙사 시설은 단출했지만 생활하는데 불편은 없었다. 물이 귀해 하루 두차례씩 급수가 된다는 점이 아쉬웠지만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식사는 기숙사에서 한국 음식을 해먹거나 병원 식당을 이용했다.
킹파드병원 인공신장센터에서 9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혜경 간호사가 식수와 살림도구를 챙겨주었고, 교민회에서 김치를 담아주어 큰 힘이 되었다. 삼성·LG전자 지사에서 전자렌지와 세탁기를 보내주어 필리핀 간호사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월급은 매달 25일 현금카드로 받았으며, 첫 달에는 급여의 절반에 해당하는 정착금도 지원받았다. 기숙사는 무료였고 소득에 대한 세금은 없었다.
기숙사에서 병원으로 출근할 때는 물론 외출할 때는 항상 차도르(또는 아바야)를 입어야 했다. 사우디에서는 여자 혼자 외출하는 것이 금지돼 있으며외출시에는 반드시 차도르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맨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가려야 한다. 우리는 1주일에 두차례씩 병원에서 내주는 버스를 타고 안전하게 외출하거나 쇼핑을 다녔다.
이같은 생활이 때론 불편하고 답답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홍해 바다의 황홀한 야경, 맑고 깨끗한 환경, 한 가족처럼 정겨웠던 간호사들을 생각하면 사우디에서의 시간은 아름답고 행복한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정말 열정을 다해 열심히 일했다는 사실에 조금도 후회가 없다. 우리 일행은 한국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성실히 일했고 노력한만큼 호평을 받았다. 심혈관계중환자실에 배치된 조선경 간호사는 심폐전문교육과정을 1등으로 마쳐 한국 간호사들의 자랑거리가 되기도 했다.
나는 주저없이 말할 수 있다. 일상의 안일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간호사들이 있다면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고. 물론 낯선 환경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열심히 일한만큼 충분히 보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영어에 능통하다면 지구촌 곳곳에서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도 꼭 알려주고 싶다.
강인화 간호사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