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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클린턴 대통령 어머니는 '간호사'
변민희 (이대 목동병원 수술실 간호사)
기사입력 2001-09-27 오전 10:43:00

'대통령을 키운 어머니들(First Mothers)'을 통해 만난 여성들은 미국 대통령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모두 인간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루즈벨트부터 클린턴까지 미국의 대통령을 키워낸 여성들의 삶은 하나 하나가 감동을 자아냈다.
특히 11명의 어머니중 두 명이 간호사였다는 사실은 내게 남다른 자긍심을 느끼게 해주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어머니 릴리언 여사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어머니 버지니아 여사는 간호사로 누구보다 진취적인 삶을 살았다. 현재 간호사의 길을 걷고 있고, 앞으로 어머니의 길도 함께 걷게 될 나에게 이들의 이야기는 무척 감명 깊었다.
아직은 간호사로서 어설픈 면이 없지 않은 나와는 달리 카터 대통령의 어머니 릴리언 여사에게는 간호사가 천직이었던 것 같다. 평생을 간호사로 일하고 퇴직한 후 68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평화봉사단원으로 인도에 가서 나환자들을 돌보았으니 말이다. 카터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평화와 인권을 지키는 일에 힘쓴 데는 어머니의 영향이 컸으리라 생각된다.
간호사가 숭고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얼굴이 붉어지곤 하던 나였지만 뭔가 느끼는 바가 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삶과 사람을 대해야 할 지가 어렴풋이 그려지는 순간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의 어머니 버지니아 여사는 일반인들이 가지고 있는 간호사에 대한 선입견을 거부하지 않았나 싶다. 낙천적 성격을 지닌 도박꾼에다, 늘 가짜 속눈썹을 붙이는 등 짙은 화장을 하고 다녔으며 의료사고 소송에 연루돼 간호사를 그만두게 되기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버지니아 여사에게 있어 간호사는 집안 사정이 가장 어려웠던 시절에 스스로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주었던 성공적인 일자리였다.
많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는 '간호사는 백의의 천사'라는 이미지가 깊게 인식돼 있어 하나의 전문직업으로 인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릴리언 여사와 버지니아 여사가 그랬듯이 내게도 간호사는 안정적인 수입을 주고 삶의 긍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직업이다.
간호사라는 전문직을 가진 여성이었던 두 어머니는 여성의 사회진출에 대한 대통령의 인식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카터 대통령은 일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연설할 때면 어김없이 60여년을 간호사로 일해온 어머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클린턴 대통령도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임명하는 자리에서 "바로 지금 어머니가 웃으면서 나를 내려다보고 계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간호사를 어머니로 둔 카터와 클린턴 대통령이 그 어느때보다 의료정책에 관심을 쏟은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이들이 간호사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영향이 단지 의료에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대통령 재직 당시 어려운 상황에 놓일 때마다 언제든지 유연성 있게 위기를 모면했던 것은 물론 회복력이 빠른 것으로 유명했던 클린턴 대통령. 그의 회복력은 어머니 버지니아 여사로부터 물려받은 특유의 낙천적인 사고방식에 있었다. 간호사의 낙천적인 사고가 환자의 회복에 좋은 효과를 미치듯이 어머니의 낙천성이 아들에게 뛰어난 회복력을 선사한 셈이다.
간호사 특유의 이해와 보살핌으로 인해 모자간의 친밀감 역시 남달랐던 것 같다. 어머니는 이런 유대감을 바탕으로 아들에게 지도자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신감과 강인함, 그리고 회복력을 불어넣어 주었던 것이다.
책을 읽는 동안 좋은 간호사 역시 이론과 기술에 능숙한 것도 좋지만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 환자를 이해하며 친밀해지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간호사로서의 자긍심을 갖게 해주고 작은 깨달음을 준 한 권의 책은 이 가을 내게 특별한 의미로 남을 것 같다.
변민희 (이대 목동병원 수술실 간호사)
변민희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