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2-05-16 오전 10:23:22

나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수줍음도 많고, 두려움도 많은 아이.
남에게 상처줄줄도 모르고,
누가 뭐라고 해도 잘 대들지도 못하는…
항상 참아야 하는 그런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내가 세상을 살기에는 세상의 무게가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나는 똑똑한 아이였습니다.
친구들이 놀 때 공부밖에 모르는 아이,
일등 자리를 놓치면 인생을 다 놓치는 줄 알던 아이,
누가 뭐라고 해도 공부가 내 인생의 전부인 줄 알던…
그래서 항상 일등만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내가 세상을 살기에는 세상의 끝은 너무나
멀었습니다.

그런 나의 주변에 갑작스런 변화가 생겼습니다.
나에게 보이지 않는 어둠의 그림자가 다가와 세상을
등지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결코 너의 편이 아니라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너를 해칠거라고…
그는 속삭이며 세상 사람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가르치고,
세상과 멀리하는 방법을 가르칩니다.

나는 친구가 없습니다.
내 말을 들어 줄 사람도…
날 이해해주는 사람도…
왜 내가 세상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지 물어봐 줄
친구도, 가족도 없습니다.
난 하루종일 내 귀에 머물고 있는 그림자와 얘기하고
때로는 반박도 하며
그가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가 없는 날은 하루종일 방안에 처박혀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다른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며
망연해 하십니다.
사실은 이 모습도 내 모습인데 말입니다.

나는 마음이 아픕니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엄마를 아프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정말은요…
내가 받은 세상의 상처는 더 아픈데 어쩌지요?
누가 닿기만 해도 자지러지게 아픈데…
아파서 죽을 것 같은데 어쩌지요?
그런 내게 세상으로 나가라시면 나는 어쩌지요?

누가 내 상처를 치료해주세요.
내가 너무 아파서 피해도 겁먹지 말고
내 상처가 나을 수 있게 도와주세요.

누가 내 손을 잡아주세요.
잡을 용기가 없어 당신의 손을 뿌리쳐도 실망하지 말고
내가 당신의 손을 잡을 때까지 기다려 주세요.

나를 버리지 마세요.
불신으로 가득 차서 내가 당신을 버려도 좌절하지 말고
내가 세상을 신뢰할 때까지 버리지 마세요.

나를 지켜봐 주세요.
내가 당신들의 도움으로, 기다림으로 일어설 때까지…
내가 착한 아이로, 똑똑한 아이로 내 모습을
찾을 때까지…

제발…
제발…
당신은 나보다 건강하잖아요.


　이미옥 간호사는 현재 서울 강남정신보건센터에서 정신보건간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정신장애인과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참간호를 실천하고 있으며, 정신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이 글은 평소 정신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보고 느낀 그들만의 내면의 고통과 좌절, 그 속에서도 삶에 대한 희망과 의지를 잃지 않는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이미옥 간호사는 이 글이 정신장애인을 이해하고 그들에게 활짝 마음을 여는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미옥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