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2-06-27 오전 10:47:52

박진영 수녀(전 전남간호사회장)

　선교의 부름을 받고 부랴부랴 고국을 떠나 이곳 몽골 울란바토르에 온 지도 어느새 두 달이 지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는 툭 터진 광활한 초원에서 한가로이 노닐고 있는 양·소·염소·말떼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흰 눈으로 뒤덮인 산자락에는 이곳 사람들이 `겔'이라 부르는 둥근 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좋았더라'라고 하신 말씀이 귓전에 맴도는 것을 느낍니다.

　선진국에서는 높이 솟은 빌딩 숲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지만 이곳 몽골에서는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없음, 가지지 않음, 가난, 그 속에서의 아름다움 말입니다.

　고원지대라 겨울이 긴 몽골의 동토에도 봄이 왔습니다. 밤새 내린 비로 땅은 촉촉하고 하늘은 찬란한 햇빛으로 맑고 푸른 그런 아침입니다.

　우리 유치원 정원에도 봄맞이 화단을 만들었습니다. 붉은 벽돌과 검정 흙, 모래 등을 사다 화단을 꾸미고, 나무 열 다섯 그루와 여러 가지 꽃씨를 심었습니다. 짧은 봄과 여름이지만 이곳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습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흙 속에 꼬옥꼬옥 눌러 심은 해바라기 씨가 꽃을 피우는 것을 보며 행복해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수녀 네 분과 함께 초등학교 두 곳과 유치원을 개설해 학교에 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직업학교 및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맡아 하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는 구청에 의뢰해 학생들의 신체검진을 실시했습니다. 건강하게 성장해야 하는 아이들이 그렇지 못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심장질환이 있는 아이, 폐가 좋지 않은 아이, 피부병에 시달리는 아이, 치아가 온전치 못한 아이들이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심각한 건강문제가 있는 아이들은 한국인 의사가 있는 연세병원에 데리고 가서 상담을 받은 후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습니다. 한 학생은 아버지가 골수암인데 병원에 갈 형편이 안돼 집에서 투병하고 있다고 해 가정방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저로서도 별다른 방법이 없어 식료품만전달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전에는 시장님과 장학사님이 외국인의 도움으로 운영되어 오던 학교 한 곳이 문을 닫게 되었다며 우리 학교에서 그 학생들을 받아 줄 수 없겠냐는 부탁을 해왔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보면서 그 옛날 우리가 가난했던 시대를 회상하며 다음 학기부터 받아주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제 두 달이 지났을 뿐인데 이곳에서 몇 년은 머무른 것 같은 익숙함을 느낍니다. `종로' `이문동' `인천행' 등의 행선지가 그대로 붙어있는 우리나라 버스, 한 사람의 손님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차장 등이 우리네 옛 모습과 너무도 흡사해서인 것 같습니다.

　이제 막 봄이 왔을 뿐인데 몽골의 겨울이 매우 춥다고 해 벌써부터 걱정입니다. 그러나 한 1년쯤 살아보면 얼마나 추운지 알게 될 거라는 생각에 조바심 치지 않으려 합니다.

　이곳에 있는 동안 제게 주어진 소명을 감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리고 고국에 돌아가 반가운 낯으로 여러분들을 뵙길 기대합니다.

박진영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