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2-11-21 오전 09:18:50

`평등을 향한 힘찬 도전(A Challenge Towards Equality)'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02 부산 아·태 장애인 경기대회가 10월 26일부터 11월 1일까지 열렸다.
　이번 대회에는 40여개국에서 선수와 임원을 포함해 약 2400명이 참가했으며 이름조차 생소한 골볼, 론볼링, 보체아 등 총 17개 종목을 통해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였다.
　참가 선수들을 위해 마련된 선수촌 병원은 10월 23일부터 11월 3일까지 운영됐다. 우리 의료진들은 이미 부산 아시안게임을 치른 뒤라 업무를 진행하는데 있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대회라는 점을 감안해 계단에 경사로를, 마당에는 휠체어용 간이화장실을 설치하고 2층에 있던 진료실을 1층으로 옮기는 등 장애인들이 이용하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병원 환경을 재조성했다.
　환경을 재조성하는 동안 무엇보다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우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시각·청각·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에티켓을 숙지하는 등 장애인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개원 하루전인 10월 22일 밤 10시에 전화벨이 울렸다. 하반신 마비인 선수의 소변줄이 막혀 급히 교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의무본부와 연락이 닿아 순조롭게 해결됐지만 향후 일어날 많은 일들을 암시하는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선수촌 병원이 문을 열던 날 호주 팀의 의사와 간호사가 방문했다. 그들은 선수촌 병원의 진료범위와 절차, 동아대병원으로의 후송체계 및 앰뷸런스 이용 등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매우 흡족해하며 작은 코알라 인형을 선물했다. 우리의 설명을 경청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잘 알려진 대로 장애인에 대한 호주의 배려가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회 기간동안 나는 선수촌 병원을 지켜야 했으므로 경기장에는 직접 가보지 못했다. 그러나 병원을 찾은 선수들의 모습을 통해 자긍심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과는 전혀 무관하게 표정이 일그러지고 생각처럼 쉽게 팔 다리를 움직이지 못해도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엉덩이에 욕창이 심해 매일 병원을 찾았던 수영선수 한 명이 있었다. 하반신 마비였지만 치료를 위해 침대로 옮겨가는 것조차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 했다. 처음에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름아닌 기다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두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자유롭지 못한 말레이시아의 보체아 선수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받아 내원했지만 은메달을 획득했다며 매우 기뻐했다. 부끄러웠다. `저 몸으로 무슨 경기를 할 수 있을까' 의심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그들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요, 최고의 선수들이었다. 역경을 이겨내고 도전하는 선수에게는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눈물과 감동의 레이스를 끝내고 환한 웃음을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서 장애인에 대한 의식변화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느껴 보지 못했던, 아니 생각지도 않았던 장애인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할 수 있었던 실로 보람된 시간이었다.
　때로는 텅 빈 관중석과 썰렁한 경기장을 보며 우리나라의 수준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느냐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했지만, 이번 대회는 마음을 열고 장애인들을 비장애인인 나와 동등하게 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비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었다. 평등을 향한 도전은 비장애인의 몫이었다. 천사와도 같은 그들의 꾸밈없는 모습을 가슴에 담고 살면서, 내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그 같은 감동을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너무나도 많은 깨달음을 선물로 받은 내 일생 최고의 경험이었다.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장애인에 대한 비장애인의 사랑을 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선수촌 병원을 철수하던 날 어느덧 창 밖의 가을은 깊어져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의 가슴속에 한국인의 모습이 작은 감동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 선수촌 병원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했던 내 모습이 그들의 기억 한 자락에 자리할 수 있었으면 한다.
　훗날 다시 나에게 이런 기회가 온다면 나의 아이들과 함께 자원봉사자로서 활동하고 싶다.

정 경 숙(동아대의료원 수간호사)

정경숙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