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3-02-12 오후 13:41:45

　얼마전 신문에서 미국의 유명한 E분유회사 사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분유회사 사장이 한 나라를 방문하는데 이렇게 큰 지면을 할애한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긴 글을 읽어보았다.

　결론은 한국은 모유수유 후진국이며, 분유소비량이 세계 9위나 된다는 것이다. 왠지 부끄러웠다. 지난 몇 해동안 우리나라에서도 모유수유를 위해 많은 노력을 했건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나를 슬프게 했다.

　1995년 한국모유수유협회가 생기면서 대학병원 신생아실에 근무하던 나에게 협회가 주최하는 모유수유 강연을 들을 기회가 생겼다. 신생아실에서 분유수유가 당연시됐던 그 때, 강의를 들으며 모유수유가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 알게 됐고 열렬한 지지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임상에서 모유의 우수성과 장점들을 알리는데 앞장서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당시 근무하던 신생아실에서는 모유수유를 위한 모자동실 운영을 하고는 있었지만, 힘든 분만을 겪은 산모들에게 모자동실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웠다. 모유수유하는 방법과 모유의 장점을 수시로 교육해봐도 산모와 보호자들은 모유수유를 퇴원 뒤로 미루기 일쑤였고, 아기를 면회만 하고 되돌려보내곤 했다.

　그러던중 우연한 기회에 지금의 병원에서 근무하게 되면서 모유수유를 향한 내 뜻을 펼 수 있게 됐다. 조산사 면허가 있었지만 신생아실과 소아과병원에서만 주로 근무했던 나에게 분만실 근무는 새로운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나 역시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에 배부른 산모들이 남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외래, 분만실, 병실, 신생아실 등으로 세분화돼 있으면서 부서의 특성이 잘 살려져 있는 큰 병원과는 달리 개인병원은 외래진료에서부터 분만, 신생아관리, 산후조리까지 모두 한곳에서 이뤄지고 있었는데 바로 이 점이 산모들에게 친숙함과 편안함을 제공해주는 요인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무엇보다 분만실을 개방해 남편이 분만의 전 과정에 참여토록 한 것은 산모나 보호자에게 신뢰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는 모유수유를 위해 분만후 기본적인 아기 처치를 한 후 산모에게 아기를 안겨주고 젖을 물리도록 간호사들을 교육시켰다. 모유수유는 엄마 혼자만의 업무가 아님을 강조하고, 남편이 옆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도 일러주었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감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스스로 모자동실을 원했다.

　평소에 환자나 보호자를 가족처럼 생각하고, 상대편의 입장에서 이해하라는 가르침 덕분이었는지 우리 간호사들은 친절하게 그들의 요구를 잘 따라 주었고 많은 사람들이 만족해했다. 산모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자는 취지에서 간호사 스스로 분만대 위에 누워보는 경험을 하게 한 것도 효과가 좋았다.

　수시로 산모들을 찾아 무엇이 힘든지를 들어주고, 퇴원 후에도 전화나 직접 상담을 통해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다보니, 정말 산모들은 남이 아닌 내 가족이 된 듯 했다. 그러던 중 나도 첫딸을 낳았고 모자동실과 모유수유를 2년 동안 성실히 잘했다. 한편으론 잘못 알려진 상식들이 동원돼 나를 원시인 보듯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편견들이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고 모유수유전문가과정, 국제라마즈출산교육자과정 등을 밟으면서 이론과 지식을 갖춰나갔다.

　이렇게 차근차근 쌓아온 경험과 지식을 무기로, 산모와 보호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성의를 다하는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들은 믿음을 표시하고 격려를 해주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세계모유수유주간을 맞아 우리병원이 `아기에게 친근한 병원'으로 선정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과장님 우리 아기 돌이예요. 모유수유로 이렇게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요. 예방접종 외에는 병원 갈 일이 없네요. 감사드려요" 하는 민제 엄마, "출산교육 덕분에 두렵게만 느껴지던 분만도 이젠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 잘 하도록 도와주세요"하던 한 예비엄마….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힘들었던 일들은 훨훨 날아가 버리고, 가슴 가득 보람이 채워진다.

박 미 경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