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3-03-20 오전 10:51:05

처음 미국에 와서 간 곳이 Sears 백화점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부터 고급 브랜드 제품보다는 색상과 스타일 중심으로 옷을 고르다보니 눈에 띄는 것은 `Made in Korea'라는 라벨이었다. 미국에서 처음 그 라벨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 후로 어느 백화점에 가도 색깔과 사이즈만 맞으면 무조건 한국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가격 면으로는 중국산이 가장 싸고 국산품은 조금 비싼 편이어서 가끔은 망설여질 때도 있지만 말이다.

　지금이야 국산화장품이 30여가지가 넘지만 1970년대 초만 해도 아모레와 쥬단학 뿐이었다. 국산화장품이 미국에 들어오기 전에는 랑콤이나 엘리자베스 아덴 같은 비싼 화장품은 쓰지 못하고 조금 덜 비싼 제품을 써오다가 최근에는 옛 향수를 생각하며 쥬단학 제품을 쓰고 있다.

　병원에서 몽블랑(Mont Blance) 볼펜 대신 한국에 다녀온 분들이 선물해준 모나미 볼펜이나 모닝글로리 삼색볼펜으로 차팅을 할 때면 그렇게 기분좋을 수가 없다.

　밤번 근무를 마치고 퇴근할 때는 베트남전, 한국전에 참전했던 보훈병원 환자들이 주차장에 세워놓은 대우자동차나 현대자동차를 보면 너무나 기분이 좋다.

　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에서 현대와 한진이라는 글씨가 뚜렷이 박힌 트럭 트레일러가 지나가면 눈이 다 번쩍 뜨인다. 저 트레일러는 이곳 시카고 시내 한복판을 달리며 국위선양을 열심히도 하고 있구나 싶어 가슴이 뿌듯해지곤 한다.

　한번은 어느 교회에서 장로님들이 목사님께 자동차를 사드리면서 꼭 한국제품을 사야된다고 했다는 소리를 듣고 한참동안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일본 제품을 선호하지 않는 나를 보며 우리 아이들이 "엄마는 왜 일제자동차를 절대 사지 않으시냐?"고 물을 때면 36년간의 식민지 생활도 억울한데, 정신대 할머니에 대한 보상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일본 제품을 살 수 있느냐고 대답한다.

　작년 가을에는 테네시주의 스모키 마운틴에 갔다가 선물가게에서 우리나라 옛날 엽전 모양의 열쇠고리를 기념품으로 팔고 있는 것을 보고 너무 기뻤다.

　어떤 한인단체에서는 성금을 모금한 후 감사의 마음으로 커피잔을 하나씩 선물로 나누어 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할아버지 한 분이 그 단체에 전화를 걸어 화를 내셨다고 한다. 이유인즉 커피잔에 `Made in China'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란다. 담당자가 값이 저렴해서 사게 됐다고 거듭 설명을 해도 화를 거두지 않으셨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우리도 유태인, 일본인들처럼 소수민족으로서 미국 땅에서 잘 살려면 한국물건, 한국식당, 한국제품을 애용해 고국 경제에 이바지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단다.

　집에 돌아올 때면 한국시장에 들러 해태제품의 대풍쌀을 사고 집에 들어와서는 삼성 텔레비전을 켜서 `전국 노래 자랑'과 `체험 삶의 현장' `열린음악회' 등을 시청한다. 물론 전자렌지와 비디오도 한국제품이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일본식당에 가면 남편이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은 일제는 무조건 싫어하면서 일본식당에는 왜 가느냐"고. 내 대답은 이렇다. "식당주인도 한국사람이요, 요리사도 한국사람이거든."

박성덕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