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3-08-14 오전 09:34:13

　한국불교 선재마을의료회는 80여명의 의료진을 중심으로 무료진료를 펼치는 의료봉사 모임이다. 간협신보를 통해 의료회에서 자원봉사할 간호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한 나는 지금까지 5년째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때부터 일요일마다 서울 강남구 봉은사에 자리잡은 무료진료소를 찾았다. 그곳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병에도 돈이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사람들, 방치된 채 고통을 껴안고 살아가는 판자촌 독거노인들, 부당한 노동 착취에 몸과 마음의 불치병을 앓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들.

　그들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돼야겠다는 내 나름의 서원을 세웠다. 그리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심신의 평안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간호했다. 봉사는 내가 가진 것을 베푸는 게 아니라 서로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었다.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참 많고 아직도 세상은 살만하다는, 당연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처음엔 일요 무료진료에 동참하는데 그쳤지만 나중에는 병원 근무시간 외의 상당 부분을 이 일에 매달렸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병원 환자들을 대하는 마음자세도 조금씩 달라져갔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희망의 등불을 밝히는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돌이켜보면 지난 5년 동안 쉴 틈 없이 참 바쁘게 뛰어왔다. 아마 누가 시켜서 한 일이었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봄, 가을이면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산간마을을 찾아가 무료진료활동을 폈다. 조선족들을 돌보기 위해 중국에 갔던 것도 소중한 추억 중 하나고, 재작년부터 서울역 노숙자들을 위해 진료사업을 실시하게 된 것도 의미깊은 일이었다.

　노숙자들의 경우 사회에 대한 냉소 때문에 처음엔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단순한 동정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다가서려 노력했고 어느새 그들은 자신의 과거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꼬질꼬질한 손이 커피 한잔이나 껌 한통을 건네며 수줍게 미소지을 때, 모두가 나의 귀한 이웃이자 정다운 길벗들임을 깨닫곤 한다.

　봉은사, 서울역 진료소에 이어 우리 모임은 경기도 부천 석왕사에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소를 개원했다. 이 지역 1만5000여 외국인노동자들과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해 요즘은 일요 봉사활동을 부천으로 다닌다. 소외된 이들이 마음 편히 진료받을 수 있는 공간으로 정착되도록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불교에서 `보살'이라는 말이 있다. 중생의 아픔과 고통을 달래주는 거룩한 분들을 칭하는. 우리 모두 보살을 꿈꾸는 세상이 됐으면 한다. 그럴 때 정말 살맛나는 세상, 신나는 세상, 아름다운 세상이 될 테니 말이다.

여오숙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