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4-23 오전 09:05:49

장기근속휴가를 받았다. 7일간의 휴가와 병원에서 지원해준 소정의 여비. 궁리 끝에 나만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유럽으로 떠났다.

　인간의 잔인성을 보여준 체코 아우슈비츠에서 첫날 일정을 시작했다. 유태인을 수용했던 28채의 건물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폴란드 크라카우로 가서 바벨성을 둘러보고,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으로 이동했다. 작은 염전 정도로만 생각했던 지하도시는 상상 외로 컸고, 소금을 깎아 만든 수많은 조각상과 거대한 성당은 경탄을 자아냈다.

　동유럽의 알프스라 불리는 슬로바키아 타트라 국립공원은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눈 덮인 산을 오르며 쭉 뻗은 나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속이 시원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겔레르트 언덕에 올라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는 도시를 조망했다. 언덕을 내려와 헝가리 영웅광장에 가면 건국 천년의 기념비들을 볼 수 있다. 저녁에는 헝가리 도나우 강에서 유람선을 탔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 아름다운 조명, 깔끔한 강 주변과 아름다운 건물들. 선상에서 즐긴 와인 한 잔은 꿈만 같았다.

　여행 4일째 비엔나에 도착했다. 2천년 역사를 간직한 음악도시에서 왈츠를 추며, 신바람이 났다. 쿠어살롱에서 열린 음악회에서는 낯익은 모차르트, 요한스트라우스의 곡이 연주됐다. 남녀 무용수가 발레로 분위기를 돋우고 유명한 아리아를 선보인 그 순간만큼은 귀족이 된 것 같았다. 짤즈부르크에서는 미라벨 정원을 둘러봤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마리아와 아이들의 노래와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후니쿨라를 타고 호엔짤즈부르크성을 둘러본 후 간판의 거리로 유명한 게트라이데를 거닐었는데, 각 상점들의 특색 있는 간판들은 진정 예술이었다. 짤즈감머구트에서는 달의 호수라고 불리는 트라운제 호수에 탄성이 터졌다. 호수 위로 쏟아지는 햇살, 부드러운 바람, 여유롭게 떠다니는 물오리, 호수에 비친 아름다운 집들. 쌉쌀한 커피 한잔에 한층 더 기분이 맑아진다. 모차르트가 유년시절을 보낸 쟝크트 길겐은 맑은 호수를 옆에 낀 자그마하고 고즈넉한 마을이다. 모차르트의 음악이 맑고 아름다운 이유를 알듯 했다.

　마지막 여행지 프라하에 도착했다. 까를교 양 옆의 검은 동상들이 10여 미터 간격으로 서서 나를 반겼다. 만지면 다시 프라하로 돌아올 수 있다는 성 요한 네포무크 동상을 만지고 또 만지며 아쉬운 마음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여행은 지쳐있던 마음을 재충전시켜 일상에서 큰 힘이 되어준다. 지금 환자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생각되는 까닭은 여행에서 보고 느꼈던 그 무엇 때문은 아닌지. 일상의 소중함을 잃어갈 때 다시 떠나야겠다.

김용희(강북삼성병원 수간호사)

편집부  news@koreanur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