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9-08-26 오전 10:30:49

　중환자실 간호사에게는 많은 능력이 요구된다. 첨단 의료장비를 다루는 기술, 환자 및 질병에 대한 간호지식, 응급상황에서의 판단력과 책임감 등이 필요하다. 환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없고 적성이 맞지 않으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이직으로 이어진다.

　수영을 하다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성직자 한 분이 초응급으로 관상동맥조영술을 받은 후 우리 병원으로 이송된 사례가 있었다. 어느 정도 급성기를 지나면서 환자의 활력징후가 안정되어 갔다. 비록 의식이 없는 환자였지만, 우리 간호사들은 마치 모든 감각기관이 다 열려있는 환자를 대하듯 하나의 처치를 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새벽에 턱 주위의 면도를 해드리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기관절개술을 받은 그 분이 입 모양으로 내게 “고마워”라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아침이 되자 나는 환자가 반응을 보였다고 인계했고, 그 말은 곧 주교님께 전해졌다.

　많은 분들이 기대와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병문안을 왔고, 환자가 반응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하지만 환자는 그 상황에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밤 근무를 마치고 자고 있던 나는 정말로 반응을 보였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기대했던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러분이 실망을 한 모양이다. 나는 그날 밤 근무 때 그 환자와 또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분은 입모양으로 답해주셨다.

　환자는 빠르게 회복되어 일반 병실로 전동됐고, 지금은 휠체어를 타고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주변 분들과 의사소통도 가능하게 됐다. 이후 중환자실 격리실 2번방은 우리들 사이에서 기적의 방, 치유의 방으로 불리고 있다.

　나는 그 분의 회복과정을 지켜보면서 무의식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강한 정신력과 평소 쌓아 놓은 성실하고 인자한 인품이 기적 같은 회복을 돕지 않았나 생각했다.

　인생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는다. 한 번 출발하면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길이기에 후회도 많고 사연도 많다. 생로병사를 다 담고 있는 중환자실은 욕심을 버리고 선한 너그러움으로 채우는 지혜를 깨닫는 곳이다.

김경옥 대전성모병원 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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