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13일 차. 12박13일의 긴 여정은 오늘로 막을 내린다. 처음 발을 내딛던 순간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신발 속 발바닥이 닳고 물집이 잡히는 감각마저 익숙해졌다. 새벽 공기는 선선했지만, 몸 곳곳에 쌓인 피로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날의 출발은 여느 때보다 늦었다.
마지막 날의 시작, 무거운 발걸음
새벽 5시 30분. 간호돌봄봉사팀의 손길이 다시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부은 발목에는 얼음찜질팩이 얹어지고, 물집은 조심스레 터뜨린 뒤 소독과 거즈로 감싸졌다. “조금만 더 버티면 끝이니까요.” 봉사팀의 부드러운 격려 속에서 참가자들은 묵묵히 신발끈을 조여 맺다.
6시 30분, 마달리에 도착하니 이미 여러 지역에서 모인 사람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함께 걸을 인원은 대략 70~80명. 하지만 초심자들이 많아 발걸음은 천천히 이어졌고, 체력의 한계로 중도에 멈춰서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 순간마다 간호돌봄봉사팀은 한 걸음 뒤에서 묵묵히 따라갔다.
터진 물집을 살피며 연고를 바르고, 땀에 젖은 얼굴에는 시원한 물수건을 건넸다. “괜찮으세요? 조금만 더 가면 그늘이 나와요.” 그 한마디가 포기하려던 발걸음을 다시 앞으로 밀어냈다.
DMZ, 긴장과 평온이 교차하는 길
걷는 동안 DMZ 접경의 풍경은 묘한 긴장감과 평온함이 공존했다. 철책 너머로 보이는 풀숲은 바람에 흔들리고, 멀리서 꾀꼬리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철망 위에는 여전히 녹슬지 않은 경계의 상징, ‘출입 금지’ 표지가 걸려 있었다.
참가자들은 이곳을 걸으며 서로 다른 감정을 품었다. 어떤 이는 가족의 고향을 떠올렸고, 또 다른 이는 평생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분단의 실체’를 처음으로 눈앞에서 마주했다고 했다.
세 시간 반, 10km의 여정을 마치고 종착지인 통일전망대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0시. DMZ 철책 너머로 북녘의 산줄기가 뿌옇게 서 있었고, 그 아래로 구불구불한 길이 보였다. 걷기는 여기서 끝이었지만, 오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참가자들은 금강산전망대를 둘러본 뒤 DMZ박물관으로 이동했다.
해단식 속에 담긴 감사와 감동
오전 11시 30분, DMZ박물관 강당에서 해단식이 열렸다. “12박 13일 동안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회자의 말과 함께 간호돌봄봉사팀을 향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수 속에는 단순한 감사가 아니라, 330km를 걷는 13일의 일정동안 묵묵히 동행하며 참가자 모두의 통증과 아픔을 덜어준 고마운 손길과 감사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해단식 직전까지도 도움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간호돌봄봉사팀은 마지막 연고와 반창고를 건네며 비로소 ‘2025 통일걷기‘에서의 임무를 마무리했다.
발걸음이 남긴 ‘통일의 봄’ 약속
일부 참가자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며 “내년에 또 보자”고 약속했고, 어떤 이는 “이제 발이 낫고 나면, 다시 천천히 이 길을 걸어보고 싶다”고도 말했다.
330km. 2500만 보. 그 발걸음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DMZ를 따라 이어진 ‘통일의 봄’을 향한 마음이었다. 그 마음이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2025 통일걷기’ 간호돌봄봉사팀 참가자>
김은희(서울아산병원), 이정희(휴직), 구본준(유원대학교), 김민아(한국장기조직기증원), 장연주(순천향서울병원), 신동수(고대구로병원), 김인애(의정부을지병원), 김기인(국립부곡병원), 유선영(세브란스병원), 오승희(종로구보건소), 이은경(서울노보스병원), 김도희(순천향부천병원), 유혜경(휴직), 강예원(보건교사), 공지우(미래한방병원), 송현종(인천세종병원), 이은정(세브란스병원), 강은영(서초구치매안심센터) 이상 무순.
12박13일. 330km, 2500만 보의 발걸음에 함께 한 18명의 대한간호협회 중앙간호봉사단에 큰 박수를 보내며 연재를 마친다.
특별취재팀 news@koreanursing.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