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6-08-10 오후 13:19:07

　다양한 소재를 찾아가는 현대극에는 진부하게 느껴질지라도 관객의 카타르시스만이 목표인 듯 최루성 영화에서 불치병이라는 장치는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불치병의 가장 흔한 소재인 백혈병은 연인의 사랑을 견고하게 지속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그리고 영화 속 백혈병은 시공간에 얽매이지 않는 지고지순한 남녀간의 사랑뿐 아니라 가족의 사랑을 일깨워주기도 했는데, 영화 〈마빈의 방〉의 백혈병은 서로가 서로에게 짐이 된 채 와해되었던 가족을 하나로 묶어 주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을 지르며 침대에서만 지내야 하는 아버지 마빈과 TV 드라마에만 빠져 사는 철없는 고모를 모시고 독신으로 살고 있는 베시(다이안 키튼)가 백혈병으로 진단을 받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베시는 골수검사를 위해 20년간 헤어져 살던 여동생 리(메릴 스트립)에게 연락을 하고 리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문제아 행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소심한 제리,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을 찾는다.

　오랜 세월 미워하고 무관심했던 자매 베시와 리, 그들도 병의 깊이만큼 두터웠던 장벽을 허물고 서로의 마음을 열게 된다. 항암요법의 부작용으로 탈모가 나타난 베시를 위해 미용사 자격증이 있는 리는 가발을 손질해 준다. 아무렇게나 눌러쓰고 다녔던 단발머리 가발을 세련되게 손질한 후에 가족 앞에 선 베시가 함박웃음을 웃는 장면은 훈훈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비장감이나 진한 여운을 남기는 라스트 신은 없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갈 때에야 비로소 백혈병을 다룬 영화라면 예외 없이 아름다운 멜로디를 배경음악으로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낼 뿐이다. 지금도 병실에서 투병하며 눈물을 희망으로 바꾸어가는 많은 백혈병 환자와 그 가족들에게 특별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오진아 (인제대 간호학과 조교수)

오진아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