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1-04 오전 09:09:15

지난해 화두가 `노인'이었다면, 2007년 새해의 화두는 `노인인권'이다. 노인인구의 증가로 머지않아 초고령화사회로 치닫게 된다는 뉴스에 놀랐던 가슴은 이제 `노인이 인간으로 살 권리'에 대한 더 깊은 애정과 관심으로 전환되고 있다.

　대한간호복지재단이 `노년을 자신있고 건강하게'라는 주제로 노인인권 포럼과 영화제를 열었다. 노인인권에 대한 인식개선을 위한 매체로 `영화'를 이용한 것은 탁월했다고 본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의 이야기처럼 영화란 인간과 더불어 인간을 이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엄선된 다섯 편의 영화는 `아이리스'를 개막작으로 해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어바웃 슈미트'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그리고 노인의 성을 다룬 `죽어도 좋아'로 이어졌다. 노인의 신체적, 인지적, 정서적, 사회문화적 견지에서 노인의 변화와 인생의 의미를 다루고 있었다. 상영된 영화를 보면 `인권'은 특별히 어려운 단어는 아니란 생각이 든다.

　인종차별을 그 특유의 유머와 성실함으로 잘 견뎌온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운전기사 호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진함으로 팔순의 유태인 부인 데이지에게서 글쓰기와 읽기를 배우는데, 여기에서 노인의 알 권리와 배울 권리, 그리고 노인의 일할 권리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데이지 부인은 호크에게 지혜로운 가르침을 선사하며 꼿꼿하고 고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녀에게 치매가 찾아오면서 그 강한 자존심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영국의 대표적 지성인 아이리스 머독의 실화를 다룬 `아이리스'에서는 치매의 진행과정을 더욱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미치는 것을 두려워 해. 내가 정신이 나간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 이는 아이리스의 불안만이 아니라 노인기를 맞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리라. 아이리스를 돌보는 남편 존이 “마치 암흑 속을 항해하는 기분, 절벽 끝에 서 있는 기분”이라고 하는 것처럼, 치매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향해 걸어가는 것과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노인의 권리와 그런 노인을 돌보는 가족을 생각한다면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연구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인생을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것은 믿었던 건강일 수도 있고, 한 평생 몸담았던 직장일 수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일 수도 있고, 살아가는 의미나 목적일 수도 있다. 특히 노인은 상실을 더 많이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에릭슨은 인생의 마지막 단계인 노인기를 상실감의 시기라고 정의했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노화는 신체의 여러 기관과 세포의 실질적인 상실을 의미한다. “눈가엔 주름이 자글자글, 목살은 쳐지고 귓털은 수북, 발목엔 혈관이 비친다”며 `어바웃 슈미트'의 워렌 슈미트는 탄자니아의 소년 엔바구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노인의 모습을 끔찍하게 표현하고 있다.

　비록 노인의 신체가 매력적이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성으로부터의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에서는 성적능력에 대한 보조약품으로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까지 젊은여성 앞에서 힘을 과시하고자 한 60대 남성의 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죽어도 좋아'는 그 선정성을 두고 논란이 많았지만, 가장 사실적이면서도 노인의 사랑 역시 아름답다는 것을 표현했다. 자극적인 영화제목 `죽어도 좋아'가 시사하듯 성의 소외계층이었던 노인에게도 신체적 변화와 함께 생리적인 요구로서 성의 이해가 필요하다. 사랑을 꿈꾸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솜털이 보송보송한 10대부터 이제는 엄마나 아내 혹은 할머니로 불리는 여성들도 사랑을 꿈꾼다. 한여름의 불꽃같은 열정적인 사랑은 아니라도 식을 줄 모르는 사랑의 온기가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기나긴 인생의 강을 지나려면 다양한 사랑의 징검다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대한간호복지재단에서 마련한 이번 영화제가 노인을 더 잘 이해하고 노인인권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된 것 같아 흐뭇했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노인인권 영화제에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단순히 공짜 영화를 상영하고 한 끼 식사를 해결해드리는 차원을 넘어, 앞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노인세대를 공감하고 이야기를 듣고 나눌 수 있는 행사로 지속될 수 있기를 바란다. 특히 영화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고 함께 참여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번 영화제가 계기가 되어 노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영화 제작과 보급이 활성화 되고,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시급히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오 진 아(인제대 간호학과 조교수)

오진아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