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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게 죽을 권리 첫 인정
존엄사 2가지 기준 제시 … 세부기준 법제화 시급
기사입력 2009-05-27 오전 11:11:12
품위 있게 죽을 권리, 존엄사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김능환 대법관)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식물인간 상태 환자가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인간답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5월 21일 판결했다.
대법원이 국내 처음으로 존엄사 인정 판결을 내린 당사자는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는 김모(여·76)씨. 지난해 2월 폐종양 조직검사를 받던 중 출혈로 인한 뇌 손상을 입은 뒤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식물인간 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지내왔다.
김씨의 자녀들은 “어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며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지난해 11월, 서울고등법원은 올해 2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고 명한 원심 판결을 대법관 14명 중 9명의 다수 의견으로 확정했다.
대법원은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는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 존엄사가 남용될 수 없도록 했다. 반드시 충족해야 한다고 정한 기준은 2가지다.
첫째,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어야 한다. △환자 의식의 회복 가능성이 없고 △중요 생체기능의 상실을 회복할 수 없는 상태이고 △짧은 시간 내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이 명백해야만 회복 불가능한 사망의 단계에 있는 환자로 볼 수 있다고 규정했다.
둘째,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는 의사가 있는 것으로 인정돼야 한다. 사망 단계 이전에 미리 의료진에게 연명치료 거부 또는 중단 의사를 피력했거나, 환자의 평소 가치관이나 신념에 비춰 연명치료 중단 의사가 있다고 추정할 수 있어야 한다.
대법원은 또 존엄사 허용기준이 충족되면 소송절차를 거칠 필요 없이 치료를 중단할 수 있으며, 회복이 불가능한 사망단계에 이르렀는지 여부에 대해선 전문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통해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대법원의 판결이 나옴에 따라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절차와 기준 등 존엄사의 세부기준을 규정한 법이 하루빨리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회복 불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과 이를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가 쟁점이다. 경제적인 이유로 존엄사가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일도 과제다.
세브란스병원은 “대법원 판결문을 받은 후 수용방안을 가족, 병원윤리위원회와 함께 논의하겠다”면서 “세브란스병원이 마련한 3단계 가이드라인을 명확하고 엄격하게 적용해 연명치료 중단을 시행하겠다”고 5월 21일 밝혔다.
대법원 판결에 앞서 서울대병원은 5월 18일 `말기 암환자의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여부에 대한 사전의료지시서'를 통과시켰다. 말기 암환자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등 세 가지 연명치료 항목에 대해 의사를 표시할 수 있도록 했다.
김보배기자 bbkim@korenur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