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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명치료에서 간호사의 의무와 윤리
연명치료 선택 또는 거부할 환자의 권리 존중해야
기사입력 2010-01-27 오전 10:00:43


◇환자의 의사 객관적으로 알 수 있는 사람은 간호사
◇간호사, 환자와 가족에게 충분히 설명할 의무 있어
◇환자의 인권 적극적으로 대변하는 변호인 역할 해야

폐암확진을 위한 조직생검 도중 폐출혈로 뇌 손상을 입어 자발호흡이 없어진 환자가 법원에 인공호흡기 제거를 요청해 받아들여졌다. 이른바 김 할머니 존엄사 사건이다.

의료진은 판결에 따라 16개월 간 환자에게 삽입됐던 기관튜브를 제거했으나, 예상과 달리 바로 자발호흡이 돌아와 201일을 더 생존하다 5년 전 남편이 사망한 날인 1월 10일 사망해 같은 날 기일을 맞이하게 됐다.

이 사건은 죽음을 터부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법학적으로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권이 우선이냐, 생명권이 우선이냐의 논의를 시작하게 했고, 사회적으로는 부모와 자식 간에도 자연스럽게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죽음의 공론화'를 불러 일으켰다.

대법원은 ① 회생가능성 없는 비가역적인 사망과정에 진입하였을 것 ② 환자의 진지하고 합리적인 치료중단 의사가 있을 것 ③ 치료중단을 구하는 치료행위의 내용은 인공호흡기 제거에 한할 것 ④ 연명치료의 중단은 의사에 의해 시행돼야 할 것 등 4가지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원칙적으로는 생명권이 우선돼야 하지만, 죽음이 삶보다 나은 분기점을 넘어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절충적인 판단이다.

법원은 소송과정에서 환자의 자기결정권의 내용과 이를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집중적인 심리를 했다. 사전의사지시서나 유언장을 작성하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결국 환자의 의사를 추정해야 하는데, 이를 객관적으로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바로 간호사들이다.

간호사는 24시간 환자 옆에서 활력징후 체크, 투약, 드레싱, 체위변경 등은 물론 가족과도 직접 접촉하면서 환자의 성격, 가치관, 종교관, 가족과의 친밀도, 생활태도, 학력, 경제력 등에 관해 의사보다 훨씬 잘 알게 된다. 간호사는 환자가 진정으로 연명치료중단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돈 때문에 거짓 의사표시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있다.

독일 켐프테너 사건에서 심장마비로 약 3년 간 지속적 식물인간상태에 있던 노파에 대해 아들의 동의를 얻어 치료중단을 지시한 주치의사를, `환자를 살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살인미수죄로 간호사가 고발한 예가 있다.

또 존엄사 사건에서 주치의는 2주 이상 해서는 아니 되는 기관삽관 처치를 무려 16개월 간 시행했다. 이럴 경우 간호사는 의사에게 기관절개술로의 전환을 요구하고, 환자 가족에게도 그 필요성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간호사는 의사, 환자 및 그 가족 사이를 원만히 연결하고 치료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환자를 객체로 보지 말고, 인격체로 존중해야 한다. 존엄사 할머니는 약 23개월 간 장기침상생활을 하면서도 욕창이 생기지 않았다. 이는 세브란스병원 중환자실 간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말기환자를 대할 때 매너리즘에 빠져 minimal care로 삶을 단축시킬 수도 있는데,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윤리적 완결성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존엄사 사건은 단순히 연명치료중단이 허용되었다는 점이 아니라, 말기치료결정권이 의료인에서 환자로 이동되었다는 점에서 혁명적이기까지 한 사건이다. 환자는 자신이 스스로 허용하지 않은 방법으로 다루어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말기치료 시 연명장치를 이용한 치료방법을 선택할 수 있고, 김할머니나 김수환 추기경처럼 연명치료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때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변화를 주시하고, 환자의 입장에 서서 환자와 가족들에게 연명치료의 효과, 부작용 및 합병증 등을 주기적으로 반복해 충분히 설명하여 제대로 된 자기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리고 그 결정을 존중하고 따라주어야 할 의무가 있다.

간호사는 치료자이자, 환자의 인권을 적극적으로 대변해주는 변호인이 돼야 한다.

신현호 변호사·법학박사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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