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2-06-27 오전 10:50:42

한국이웃사랑회 긴급 난민구호의료팀의 일원으로 지난 1월부터 5개월간 아프가니스탄을 다녀왔다. 파키스탄의 이슬라마바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시커먼 매연과 까마귀 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이슬라마바드에서 3시간 정도 떨어진 페샤와르라는 도시로 아프간 국경 지대에 밀접해 있었다.
　
페샤와르에 도착해보니 `1루피'를 외치며 구걸하는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한 채 처량한 표정으로 옷자락을 잡고 늘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에 가슴이 아팠다.

　아이들을 뒤로하고 들어선 숙소는 너무나 추웠다. 여름이면 40∼50도를 웃도는 무더위 탓에 천장을 높게 만들어 더 커 보이는 방에서 자그마한 스토브 하나로 추위를 물리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담요를 두 개씩 덮고 옷을 끼어 입고도 말을 할 때면 입김이 새어나올 정도로 방안 공기는 차가웠다.

　다음날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의료봉사 활동에 나섰다. 내가 일한 곳은 바자르라 불리는 재래시장에 위치한 베자드건강센터였다. 정화조와 하수시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아 곳곳마다 썩은 물이 고여있는 등 주변의 위생상태가 엉망이었다. 길에서 오줌을 누거나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아이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베자드건강센터는 우리나라의 개인의원 정도 규모로 임상병리 및 초음파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원래는 20루피의 진료비를 받았으나 `한국이웃사랑회'의 지원이 있은 후부터는 거의 무료로 진료 및 검사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가 도착한 후로는 하루에 150여명 이상의 환자들이 밀려들었다. 환자의 대부분은 여성과 아이들이었으며, 오염된 식수로 인한 감염환자와 불충분한 난방시설로 인한 감기 환자가 많았다.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는 병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놓인 경우도 종종 있었다. 몸이 아프면 병원을 이용하기보다는 약을 지어먹는 경우가 많아 벌어진 상황들이었다.

　특히 여성들은 이슬람 문화권에 속해 있다보니 환부를 남자 의사에게 보여주려 하지 않아 치료 시기를 놓치곤 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마침 한 여성이 근육주사를 맞고 있었는데 주사를 놔주는 사람이 남자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르카를 덮어 쓴 채 팔만 내놓고 있었다.

　자신들을 돕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우리를 반겨주리라는 믿음은 그들의 경계심 어린 눈빛에 여지없이 무너져 내렸다. 다가가기만 하면 피하고 우리에게 주사를 맞는 것도 싫어하는 모습에 기운이 빠지기도 했다. 그곳 원장님이 몇 번이나 한국에서 온 간호사라고 설명해 준 후에야 비로소 경계심을 풀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진실은 통하는 법이라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자연스럽게 손을 잡더니 나중엔 볼에 뽀뽀까지 해주었다.

　부리부리하게 큰 눈과 높은 코, 약간은 검은 피부 등 그들과 우리는 생김새부터 달랐다. 그러나 그들과 우리사이에는 `정'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넉넉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아껴둔 과일과 장신구를 선물하는 모습에서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의 `정'을 느낄 수 있었다.

　5개월 동안 의료봉사를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곳 사람들이 영어를 구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대부분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약을 조제하고 주사를 놓는 일을 담당했던 나는 설명을 해줄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다행히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사용하는 페르시아어와 파쉬토어를 배워 간단한 설명은 해줄 수 있었다.

　한국에서 가져온 약품들은 나날이 떨어져 가는데 입소문이 퍼졌는지 환자들은 늘어만 갔다. 처방전을 주며 약국에 가서 약을 구입하라고 해야 하는데 그들의 형편을 뻔히 아는지라 그 말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간단한 처치만으로도 회복이 가능한 환자인데도 무균적인 처치를 해줄 수 없어 다른 병원으로 보내야 했을 때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이 나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얼굴과 머리에 심한 화상을 입어 찾아온 아이를 정성껏 세척하고 치료해준 결과 조금씩 회복되는 모습을 통해서는 기쁨과 함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쟁이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귀향을 원하는 난민들이 늘어갔다. 긴급 구호활동보다는 장기적으로 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단순히 진료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보건교육을 병행함으로써 좀더 나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오르니 아프간에서의 생활들이 슬라이드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잦은 감기로 콧물을 달고 다니던 아이, 열성경련에 힘들어하던 이즈마엘, 가난하지만 언제나 함박웃음을 짓던 파왓, 디릭, 얄리까 …

　고단하

유명순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