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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간호문학상 수필 가작
할아버지의 검은 손
기사입력 2012-12-20 오후 13:29:39
- 김현진(충남대병원)


“이상하게 손이 움직이질 않아..”

무더웠던 지난여름이 가고, 어김없이 가을이 찾아왔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들뜨는 한가로운 주말 오후였다. 갑작스럽게 응급실을 찾아온 할아버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시골에서 먼 길을 초조하게 달려왔을 할아버지 생각에 마음이 아파 퇴근하자마자 응급실로 쫒아갔다. 저기 어딘가 한눈에 들어온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와 많이 닮았지만 어딘가 더 많은 세월을 흘러지나온 노인이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서로를 발견하고는 금세 터져 나올 것 같은 이유 없는 눈물을 참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 번의 가을이 지나갈 동안 세월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훨씬 더 많이 흘러가 있었다. 180cm가까이 되는 훤칠한 키에 부리부리한 눈매로 항상 나에게는 시골 촌사람보다는 잘생기고 멋있는 할아버지였는데 지금 마주한 노인은 내 기억 속의 그분이 아니었다. 그 어딘가 희미한 기억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지금 내 앞에 힘없이 구부러진 등에 볕에 그을려 검게 탄 피부의 노인은 슬픈 두 눈을 한 채 오롯이 움직이지 않는 검은 손만 만지작거렸다.

지난 시간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지 못하고 어쩌면 가끔은 잊고 살았을지 모를 내 모습을 나무라는 듯 나는 너무 자라나있었고 그는 너무 작아져있었다.

어제부터 오른손이 저리고 힘이 점점 풀려 자고나면 나아지려니 하고 내버려뒀더니 손이 말을 듣지 않는다며 내게 쓴웃음만 지어내셨다.

아무 말 없이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얼마나 있었을까. 할아버지는 내게 “낫지 않을 병이니 이제 그만 집에 가지..뭐..”라며 자그맣게 말하였다. 체념한 말투로 쓸쓸히 꺼내는 한마디에 마음이 울컥했다. 내가 간호사인데, 나의 가족하나 챙기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에 이내 미안하고 죄송스러울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정확한 치료를 위해 뇌졸중집중치료실로 입원하게 되었고 입원설명을 듣고 이래저래 간호사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할아버지는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얌전히 누워계셨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여러 마음이 들었다. 매일 보던 우리병원 환자복인데 그걸 입고 있는 할아버지 모습을 보니 낯설고 또 한번 마음이 아려왔다.

오전부터 내내 굶은 할아버지를 위해 죽을 사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할아버지 식사를 도왔다. 움직이지 않는 오른손을 대신해 왼손으로 밥을 먹는 모습이 서툴기 짝이 없었다.

식사를 마치고 짐을 정리하는 우리를 할아버지가 지켜보고 있다. 우리가 가는 걸 알고 있나보다. 내일 다시 오겠다 약속하고 할아버지 손을 꼬옥 잡았다. 얼마나 오래 잡아보는 할아버지의 거친 손인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움직여 보려 왼손으로 팔을 자꾸만 올리신다. 팔이 움직이면 함께 집에 갈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모양이다.

늘 오가던 병원인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마음이 이상하다.

언젠가 내 동생과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탔던 기억이 난다. 할아버지에게 오토바이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가족들이 많이 찾아오는 명절 때에도 할아버지는 오토바이를 타고 마을 어딘가로 갔다 한참 뒤 돌아오곤 하셨다. 자식들이 하나 둘 떠나가던 그 이후부터는 아마 오토바이가 할아버지의 유일한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하얀 셔츠를 입은 할아버지가 하루는 나와 내 동생을 오토바이에 태워주신 적이 있다. 그때도 여름이 가고 시원한 바람이 불던 초가을이었던 것 같다. 할아버지의 하얀 등 뒤로 보았던 시골풍경과 함께 귓가를 간지럽히며 스쳐가던 바람들도 아직 곁에 있는 것만 같은데, 언젠가 시골에 가면 다시 한 번 할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탈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면회가 끝나고 떠나는 우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에 뭔지 모를 슬픔이 가득 잠겨있었다. 다시는 손을 쓸 수 없을 것이라던 할아버지의 쓸쓸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떠오른다.

오늘 밤 나는 이상하게도 다시 할아버지의 등을 꼬옥 잡고 오토바이를 타는 꿈을 꿀 것 같다. 처음 타는 오토바이가 너무 무서워 꼭 잡고 있었던 할아버지의 하얀 등 뒤로 숨겨져 있던 푸른 가을하늘만큼 높은 당신의 마음을 다시 한 번 느껴보고 싶다.

언젠가 다시 검게 탄 그 손을 움직여 우리 한 번 더 함께하길.. 꿈에서도 기도하며 잠이 들 것이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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