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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회 간호문학상 수기 당선작
따샤꼬르 마리암
기사입력 2013-12-18 오전 09:18:27
- 전혜미(충북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3월의 힌두쿠시산맥은 파릇파릇함과 다르게 돌과 모래로 험악하다. 만년설로 덮은 산꼭대기는 아직도 한 겨울이라 서러우리만큼 황량하다.

3~4살이나 됐을까? 아이가 큰 눈을 부릅뜨고 놀란 듯 폭이 넓은 셔츠 페란과 품반이라고 부르는 아프간전통바지를 입은 아빠 다리 틈 사이로 숨어버린다. 아빠 나지불라는 다리사이로 숨어드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리고 한 번이라도 더 봐달라고 우리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샬람.. 샬람...토르, 앗살람 말레꿈…독토르!!” 안녕..안녕하세요.. 의사양반 !! 아빠 나지불라 손에 걸쳐진 아이는 흙투성이 손을 입에 대고 “앙”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낯선 이방인들이었다. 징기스탄의 후예인 하자라족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태어나서 처음 보는 생김새였다. 간혹 마을 어귀를 지나가던 미국군인들 하고는 다르게 생겼다. 누렇고 작은 키에 검은 머리카락을 한 낯선 이방인들이다. 아이에게 우리는 경계를 하고 또 해야 하는 낯선 이방인이다.

겁을 먹고 아빠의 품반을 움켜쥐고 있는 아이에게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했다. 뒤뚱뒤뚱 걷는 아이는 너무 작고 여린 몸에 배만 불룩 튀어나와 있다. 얼어있는 아이를 달래고 심지어 놀라 바닥에 넘어진 아이를 아빠 나지불라가 험한 고함으로 꼼짝 못하게 세웠다. 아이 손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H 초콜릿을 두 개를 쥐어주며 달래본다. 아이는 계속 운다. 전통적으로 끼니를 때우는 화덕에 구운 납작한 넌 nān 조각을 쥐어주었다. 그제야 울음을 멈추고, 입에다 넌 nān을 갖다 대며 그 큰 눈에서 눈물만 닦아내고 있다.



마리암 (Mariam)

태어날 때부터 아이가 힘들어했다. 항문이 없이 태어났다. 엄마 베네프샤는 아이를 저주했단다. 아이가 죽기만을 기다렸단다. 근데 아이는 젖을 빨았단다. 에머럴드처럼 파랗고 동그란 눈을 크게 뜨고 엄마 품에서 젖을 찾았단다. 아이는 그렇게 배만 불러왔다고 한다. 배가 부르면 토하고, 토하고 나면 또 젖을 물었다고 했다. 아기가 죽지 않고, 태어나 베네프샤에게 온 것도 Inshallah 인샬라 -하늘의 뜻이라고 믿었다.

나지불라는 이 마을 저 마을 병원을 다녔다. 열심히 일했다. 양을 치고, 염소고기를 말리고, 빨래를 해주거나 부르카나 품반 등 전통옷가지를 만들어 팔아 돈이 모이면 마리암을 데리고, 무당을 찾아다니고 이곳저곳을 다녔다.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까지 오고갔다. 하늘의 뜻 이였는지 모른다.

몇 해 전 유럽에서 건너와 시골 판쉬르를 방문 치료하던 국경 없는 의사회소속 외과 의사를 우연히 만났다. 선천성 직장항문기형(Imperforate anus)이라는 진단이라도 받을 수 있었다. 도움으로 수도 카불에 있는 프랑스 병원을 찾아갔다. 모은 돈으로 약값을 하고 각국의 NGO 기관에서 일하는 소아외과 의료진들의 도움으로 대장을 잘라내어 인공항문을 만드는 수술을 받았다. 먹고 소화시키고 배변을 하고 몇 달은 치료를 잘 받아 성과는 좋았다. 게다가 항생제 치료에 효과가 너무나도 빠르게 호전되었다. 약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많이 못 받아 더욱 항생제와 진통제는 기적의 약이 되고 말았다.

손안에 인터넷과 우주정거장을 오고가는 첨단시대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아프간은 도시를 제외하곤 전통생활방식을 고수하고 전쟁을 겪은 시대 환란 속에서 문명의 혜택을 받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약의 효과는 기막히게 수술부위가 가라앉고, 염증반응이 해결되고 좋은 치료와 정성어린 간호를 받고 마리암은 퇴원을 했다.

엄마 베네프샤는 6명이나 되는 자녀들을 돌보느라 하루하루가 무거웠다. 아빠 나지불라는 염소를 치고 양을 키우고 빵을 구워 팔거나 시장에서 온갖 과일이나 채소 등을 팔아서 생계를 이어가야만했다. 수술이 잘되어 퇴원은 했지만, 어린 마리암의 간호를 제대로 해 줄 형편이나 위생환경은 엉망이었다. 지속적으로 상처부위가 덧나지 않게 약을 먹어야 했고, 하루하루 살면서 밥이라도 제대로 먹이거나 간호를 해주거나 하는 그런 보살핌의 호강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린아이 혼자서 자기 몸을 돌볼 수 없음에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서 아이는 그냥 방치됐다. 아직까지 가족의 품에서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Inshallah’ 하늘의 뜻이기에 감사했다.

모래사막 바람이 불고 라마단 기간이 지나고 흰 눈을 보고 또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한 어느 날 밤이었다. 마리암이 밤새운다. 너무 어려서 큰 수술을 받은 후라 한동안 웬만한 고통엔 절대 울지 않는 아이였다. 근데 아이의 고통이 얼마나 컸으면 그렇게 울부짖었을까? 항문은 만들어졌으나 영양과 위생상태가 심해진 상태에서 아이는 대변도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가 됐다. 항문은 너무나 좁아졌고, 썩어가는 주변에 누공이 생겼다. 고름이 고이고 피가 섞여 나왔다. 아이가 자지러지는 고통을 참지 못했다.



바그람한국병원(Bagram Korean Hospital)

2001년 전쟁과 오랜 내전으로 파괴되었지만 탈레반정권이 축출되고, 2010년 12월 UN안보리 결의1383호에 따라 국제안보지원군(ISAF)를 설립하고 Operation Enduring Freedom항구적자유작전이 시작됐다. 아프간의 안정화 및 재건활동을 추진하고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심으로 43개국의 나라에서 아프간의 재건 및 복구를 지원하는 여러 재건사업들이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는 아프간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화구축 지원노력에 동참하고, 빈곤감소 및 지속적인 경제 사회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파르완주에 2010년 7월 지방재건팀(Provincial reconstruction team)이 공식적으로 보건, 교육, 농업분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임무를 위임받고, 병원 경찰훈련 교육문화센터 등의 시설을 설립하고 각 분야의 전문가를 파견하였다.

보건의료분야에서 바그람 한국병원은 외래환자진료 및 투약하는 1차 의료기관의 환경을 넘어 환자를 수술하고 입원시켜 질병치료 및 최상의 간호를 통해 환자의 안위를 도모하고 현지의료진의 역량을 강화시키기 위해 교육이 가능한 2차 병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추진하였다.

2002년부터 한국군부대가 파병되어 의료 건설을 비롯한 재건활동 하다 2010년 바그람 한국병원(Bagram Korean Hospital)으로 개원했다. 2층 건물로 입원실과 수술실 2개와 마취기도 있었지만 파견된 한국의료진이나 현지 의료진도 마취 가능한 전문가가 없어서 미공군병원 CJTH 이나 이집트병원의 군 의료진들에게 의뢰하고 협진하여 간단한 국소마취수술만을 가능했었다. 오랜 기다림을 지나 2011년 1월 간호과장 및 수술전문간호사로 파견된 나로서는 3월 추가의료진과 마취과전문의선생님이 오시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기다렸다.



기다림(Waiting)

아빠 나지불라는 시골마을 판쉬르에서 아이를 안고 사막길을 4시간 걸어왔다. 오전에 집을 나섰는데 점심이 지나고, 더위와 허기에 지쳐 하루를 보냈다. 파르완 주에 있는 바그람 한국병원에 들어가려면 마을 보건소에서 발급해주는 소개장(Referral form)을 받아야만 한다. 진료와 약 뿐 아니라 수술과 입원, 물리치료 등 모든 검사와 치료가 무료이기에 소개장을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리거나 무진장 애를 써야 한다. 아이의 통증이 계속된다. 암거래로 이뤄지는 방법을 선택하여 100달러를 건네주고야 소개장을 받았다. 아프간에서 선생님이 한 달에 받는 월급이 달러로 환산하면 25달러정도 되니 몇 달을 모아둔 돈이었다.

밤이 되서야 도착한 차르카르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새벽이 되어 장카담 마을에 도착했다. 병원을 찾아 Korean Hospital 라고 크게 새겨진 병원간판을 멀리서 보고 ‘이제야 왔구나, 마리암 조금만 참아라’ 기쁨과 안심은 한 순간이었다. 새벽부터 기다렸는지 갓난아이부터 할아버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있다. 들것에 들려 누운 소년의 다리는 총에 맞았는지 붉은 피가 흥건히 묻은 헝겊으로 어지럽게 묶어있다. 정신이 나갔는지 정신을 놓았는지 가만히 소리 없이 누워있다. 틈사이로 병원 앞에서 다섯 시간 가량 줄을 섰다.

처음 네팔용병들의 전신조사를 받고, 미로 같은 방사선탐색기를 지나 다시 전신스캐너를 지나 적어도 다섯 번이상의 엄중하고 철저한 출입조사를 받고나서야 병원입구에 들어왔다. 방탄복과 방탄모를 쓰고 완전무장한 미군들의 철저한 전신스캐너를 다시 지나, 최첨단 동공인식컴퓨터 스캔작업으로 최종 신분확인하고서도 한 시간 더 기다려 결국에 응급치료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고열과 빠른 호흡, 심한 통증인지 배고픔인지 모를 아픔에 괴로워하는 마리암을 곧바로 응급치료하고 심각한 상태를 가정의학과, 소아외과선생님의 입원결정이 내려졌다. 아프간민간인들이 미군기지안에 머물 수 있는 경우가 없었기에 입원결정만으로 해결되는 단순한 상황이 아니었다. 미군 및 관련기관의 절실한 협조를 받아야했다. 여러 도움과 힘겨운 절차를 지나 마취과 consult를 넣고 입원실로 마리암을 안고 뛰어올라갔다. 마취와 수술이라는 과정을 잘 견딜 수 있도록 입원치료와 정성어린 간호로 마리암의 상태를 최상으로 만들어야했다. 아이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것이 가장 우선이었다.

어느새 누렇고 까만 머리의 낯선 이들의 대한 경계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몸이 아파서 느끼는 고통과 낯설고 두려운 병원이라는 환경과 흰 가운을 입은 생김새자체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을까? 일차적으로 처방된 진통제와 항생제투여가 너무나도 빠른 효과를 보였다. 약이라는 문명의 혜택을 받지 않는 사람일수록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였을까 아이의 통증은 금방 사라졌다. “샬람..앗 살라 말레이쿰~마리암.. 막블~” 아침마다 “안녕 ~ 너무 이쁜 마리암”이라고 말해주고 아이와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았다.



기도(Prayer)

병원 출입구 바로 앞 장카담 마을이 있다. 병원 2층 입원실 창문을 통해 마을 모스크(Mosque)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노랫소리가 울렸다. 하루 종일 피곤했을 마리암이 뒤척이다가 엄마를 찾아 울먹이며 잠이 들었다. 아빠 나지불라가 플라스틱주전자에 화장실에서 떠온 물을 가득 채운다. 얼굴부터 손발 모두를 깨끗이 닦고 양탄자를 깔고 동쪽을 향해 기도를 시작했다. 혹시나 수술 후 마리암이 깨어나지 못할까봐 두렵고, 처음 보는 낯선 한국인들에게 아이의 수술을 맡긴 상황이 혼돈스럽고 후회스럽거나,

결국엔 이 모든 일이 신의 뜻이니 믿음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듯했다. 복잡하고 두려움으로 신께 고하고 흘리는 기도의 눈물, 아빠의 눈물을 보았다. 나지불라의 눈물 어린 기도가 모든 의료진마음의 문을 두들겼다. 말도 통하지 않아 발짓손짓해가며, 통역을 찾아 열심히 설명하고, 진지하게 아이를 위하는 우리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했다. 전쟁의 땅, 가난과 아픔으로 가족을 잃고 종교적 신념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끔찍한 테러와 피 흘림이 반복되는 땅에서 종교, 국경, 인종, 성별을 떠나 오직 한 아이 마리암을 위해서 절실히 기도했다.

바그람 한국병원에서 최초로 전신마취수술을 한다는 사실 또한 역사적인 의미로 소중했다. 그것보다 더 크고 귀중한 의미였다. 수술을 앞 둔 일주일간 마취와 수술에 참여할 현지간호사들을 선정하고, 함께 마취기 및 수술실을 소독하고, 여러 수술기구나 물품 등을 정리 준비하고, 마취 수술과정 및 전반적인 수술실간호에 대해 공부해왔던 모든 것을 정리했다.

하나의 착오나 작은 실수라도 발생하지 않도록 마취와 수술간호과정을 다시금 공부시키고, 만반의 준비를 끝냈다. 10여년 이상의 경력을 가지고, 수백 번, 수천 번 같은 수술을 하더라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사람의 생명을 돌보는 의료인의 기본마음이다. 아무리 간단한 수술이라도 전신마취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간호사와 의료진들의 지식과 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2011년 3월 11일 월요일 바그람 한국병원 최초로 전신 마취로 마리암의 누공이 있는 직장항문기형부위와 항문협착증상이 생긴 부위 수술을 실시했다. 3월1일 날짜로 파견된 마취과전문의선생님의 전신마취를 도와 현지간호사 아흐마디가 마취어시스트를 하고, 소아외과전문의 집도하에 수술소독간호업무 및 순환간호사의 업무를 교육받고 있는 수나튤라를 어시스트로 세워 마리암의 수술을 함께했다. 시작 후 6시간이 지나 저녁노을이 질 무렵 수술이 끝나고도 한참을 마취에서 깨지 못하던 마리암이 크고 이쁜 에메랄드빛을 가진 눈을 살며시 뜬다. 혈압 맥박 호흡 모두 정상을 유지했다. 눈물고인 큰 눈을 깜빡이며 울다 살며시 웃는다.



감사(Thanks)

마리암의 건강상태는 매우 빠르게 회복되었다. 아픈 주사에 투정도 없고, 병원환자식이도 잘 먹고 잘 싸고 입원한 어른 환자들과도 잘 놀고 너무나도 놀랍게 병원생활에 잘 적응한다. 놀라운 속도로 항생제가 잘 듣는 것처럼 울지도 않고, 경계심을 풀고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보낸다.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이쁘고 사랑스러워 저마다 사진기에 마리암의 모습을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수술 한 달 후 마리암이 입원실에서 내려왔다. 백설 공주와 일곱 난장이가 그려진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마리암의 손을 잡고 병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눴다. 선물 받은 인형과 책들과 각 기관에서 보내준 쌀과 과자, 사탕, 휴지, 옷가지 등을 한 가득 넘치게 넣은 큰 자루와 가방을 들고 선 아빠 나지불라 팔에 마리암이 안겨있다. 크고 선한 마리암의 눈동자에 눈물방울이 맺혀있다.

양 팔을 벌리고 “마리암 운자~비쉬” 이리 와봐 했더니 한 참을 망설이던 마리암이 손을 내밀고, 가슴을 내밀어 천천히 내 품 안으로 건너왔다. 아련하게 목이 메어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다시금 꼭 안아 주었다. 내 품 안에서 마리암이 작은 목소리로 “따샤꼬르~따샤꼬르~” 고마워요~ 고마워요 라고 한다.

울컥 떨어지는 눈물에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흘러버린 눈물을 마리암이 작고 여린 손으로 닦아준다. 한참을 멍하니 서있었다. 병원 문을 나가기위해 다시금 전신스캔을 받는 마리암과 아빠 나지불라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뒷모습이 사라지자 병원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멀리 장카담 마을골목길을 지나는 마리암에게 손을 흔들었다. 의료진과 나에게 보여준 무한한 신뢰와 따뜻한 애정에 감사한 마음으로 벅차올라왔다. “따샤꼬르~ 따샤꼬르 마리암” 목 안에서 외치고 가슴 깊게 소리쳤다.



희망(Hope)

하루에도 몇 번씩 단거리로켓공격으로 도로가 파손되고, 건물이 불에 타기도 하는 곳에 여전히 한국병원에서 노력하는 의료인들이 있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탈레반의 공격, 폭탄테러 등으로 국제안보지원군과 현지인들 뿐 아니라 탈레반도 포함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상자가 발생하면 탈레반이든 누구든 상관없이 인종과 국경종교를 뛰어넘어 고통 받는 모든 이들을 치료하고 간호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간호사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희생봉사와 섬김을 통해서 세상 누군가에게 살아갈 희망이 되길 소원했다. 누군가 해야 하지만 아무나 선뜻 용기 없이는 갈 수 없는 머나먼 아프리카 땅이나, 위험과 목숨을 걸어서라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면 그곳으로 보내달라고 원했던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땅에서 사랑을 가지고, 의미 있는 일을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부족하고 모자란 착각이었다. 무엇보다 병마와 싸우며 아픔으로 고통 받는 자의 간절한 소망과 눈물어린 가족의 보살핌이 절실한 소망이 되어 엄청난 기적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좀 더 건강하고 희망 넘치게 살고자 하는 삶을 향한 끈기와 힘이 세상 어느 누구의 도움보다 크고 놀랍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구 저편에서 좀 더 배우고, 좀 더 잘 살고, 좀 더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운명적 혜택과 자유가 당연한 듯 감사하지 못했다. 때론 자만하고 값싼 눈물과 모자란 동정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끔씩 손 내미는 허울뿐인 나눔과 섬김이 아닌 좀 더 깊은 관심과 새로운 사랑을 품고자 한다. 세상 모든 이들에게서 낮은 자세로 항상 배우는 간호사가 되길 오늘도 기대해본다.



3월이 지나 여름이 되면 험악했던 힌두쿠시 산맥 꼭대기의 눈이 어느덧 녹아 물길을 만들고 온 마을을 감싸 돌고 도는 냇물이 졸졸 흐르는 푸르른 쇼말리 평원에서 평화로운 아침을 맞는 아이를 꿈꾼다. 부르카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뛰어노는 마리암의 웃음소리가 내 가슴속에서 울려 퍼진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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