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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간호문학상 수필 가작
출근하는 풍경
기사입력 2015-12-16 오전 11:20:20
박서영(경기 여주시 뇌곡보건진료소장)


다섯 시 삼십오 분. 아파트 4층.

빼곡한 승용차, 부동자세로 꿈적 않는 노란색 어린이집 미니버스, 군데군데 기둥처럼 솟아오른 녹색 나무와 아이들 없는 빈 놀이터.

처음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아직 풀지 않은 보따리와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을 훑어보노라니, 쓰임도 없고 없어도 더 이상 찾지 않을 것 같은 싸구려 소품들. 플라스틱 소쿠리와 냄비, 자리를 찾지 못해 뒹굴고 있는 볼품없는 세간들이 내 삶의 자화상처럼 보였다.

더 자고 싶은 몸을 일으켜 눈꺼풀을 간신히 치켜뜨고 라디오를 켠다. 전날 준비한 상추와 깻잎을 꺼내고 과일과 열무김치를 꺼냈다. 아침에 구워 먹을 양으로 미리 사다둔 돼지고기를 구웠다. 아침밥을 잘 먹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고기를 구어 채소에 얹어 식사를 마쳤다. 고등학생 아들은 국 대접에 밥 한 공기를 풍덩 담그고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나도 모르는 엄마의 잔소리를 거부하는 표현으로 보였다. 나이, 엄마라는 권위로 충고를 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늘어 놓았나보다. 그런 뒷모습을 보면서 잠깐 마음이 보대꼈다.

화장대에 앉아 어제의 그 얼굴에 분칠과 덧칠을 한다. 익숙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지루하고 피곤한 거울 속 그녀가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가뭄으로 맨살을 드러낸 저수지처럼 에너지와 의욕이 고갈되었다. 살고는 싶고 오래 살기는 싫고. 이 무슨 모순인가. ‘죽음이란 무엇인가’(DEATH)의 셀리 케이건이 말한 죽음은 나의 끝, 내 인격의 끝, 모든 것이 끝이라는 글에 마음을 기댄다. 죽음에 대한 그의 생각은 중립적이고 현실적이며 근거 중심의 논리적이다.

출근이 익숙지 않아 긴장되고 빨리 집에서 나가야 할 것 같은 조급증이 생겼다. 복도를 지나는 동안 열려있는 창문을 흘끔 바라보았다. 저 안의 나와 다른 삶. 쳐다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관음증처럼 궁금증을 이기지 못했다.

어깨의 가방과 브라운색 구두와 우산, 대학노트 한권, 자잘한 문구를 삶을 놓지 않으려는 듯 움켜쥐었다. 엘리베이터를 나왔다. 군데군데 자동차가 빠져 나간 빈자리. 어젯밤 빈 공간을 찾으려고 맴돌았던 꿈쩍 않던 그 자리를 아쉬운 듯 바라본다. 후진을 하고 바퀴가 굴러가는 순간 화장대 위 마시다 만 커피가 생각났다.

만나서 사랑하고 낳고 양육하고 사는 동안 자연의 품속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 자연의 섭리대로 충실하게 살았는데 이제 할 일을 마쳐가니 자연은 나를 외면하려 하네. 세상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밀려나는 것이다. 어쩌자고 나는 세상에 보내졌을까.

라디오에서 Miles Davis의 익숙한 재즈가 흘러나왔다. 이때쯤 음악과 함께 커피 한 모금을 마셔야 하는데 두고 온 커피가 간절했다. 쌉싸름한 첫 맛과, 삼키는 순간 보드라운 달콤함으로 혀 안쪽을 간질이며 넘어가는 느낌은 사랑하는 사람과 깊이 나누는 키스처럼 그립고 절실하다.

한적하게 달리는 곧은 도로 양 옆 플라타너스가 철없이 힘자랑하는 젊은 숫사자의 위용처럼 푸르고 힘차다. 그동안 사택에서 생활했던 관계로 출근길의 가로수와 바람과 구름을 모르고 살았다. 바람이 흔들고 간 그 곳은 여지없이 꽃이 피고 향기가 흘렀을 것이다. 이미 가버린 끝 간 데 모르는 바람을 기다리며, 낮과 밤을 그리워했을 꽃이 진 그 자리는 붉은 멍이 깊이 남았으려니.

떠난 지 며칠 안 된 전 임지는 이별의 여운이 가슴 가득하다. 마지막 근무 날 아침 메모지에 이별의 인사말을 적었다. 발령은 이미 예고되었던 터라 떠날 준비는 되었으나 일일이 인사하기 어려워 마을 방송을 통해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었다. 미운 정 고운 정 허물은 덮어주시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주민 여러분 안녕 하…”

목이 콱 메었다.

자주 가정방문을 해야 했던 교통사고로 누워있는 젊은 하반신 마비환자, 치매와 욕창 환자, 수없이 만난 주민들의 모습이 스냅사진이 되어 울컥 솟아 숨구멍을 막아 버렸다. 어떻게든 진정을 하고 말을 맺어야 한다. 마이크는 계속 켜져 있고 듣고 있을 사람들에게 침착한 마무리를 하고 싶었다. 뒤돌아서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다시 목을 가다듬고 이어갔다. 그러나 흔들린 감정에 더욱 빠져버려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톤은 더욱 낮아졌고 떨리는 목소리를 달래 띄엄띄엄 겨우 말을 이었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웠다.

“가고나면 내가 어떻게 살 수 있을까 몰러… 죽을 때 까지 안 잊어 버릴테니께 그런 줄이나 아슈!”

무뚝뚝하고 귀가 어두워 하고 싶은 말만하고 가버리는 분이다. 배웅하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하면서 팔십 할머니는 투명 유리를 밀치고 뒷모습만 남기며 무거운 걸음을 옮겨갔다. 그 순간 나는 달려 나가야 했다. 두 손을 잡고 그동안 고맙고 감사했다고 내 생각을 전해야 했다. 멍하니 서 있었다. 그 한마디는 벌겋게 달군 인두로 가슴 한 복판을 지져 놓은 것 같았다. 그러나 아픔이기에 앞서 슬펐다. 나는 그녀가 남긴 말을 잊을 수 있을까 이별은 자의든 타의든 아프다. 흉터가 남도록 날카로운 손톱으로 힘을 주어 깊이 파내는 것과 같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아픔과 속마음을 들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지나고 그들의 속사정과 개인의 아픈 가족사와 털어놓지 못할 사연들을 알아버릴 즈음,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어느새 나도 모른 애정이 쌓여 갈 것이고, 그 후 가슴 깊은 곳에 또 하나의 훈장을 새길 것이다.

그렇게 순환과 반복을 이어갈 것이고, 그리하여 마지막 깊은 숨을 몰아쉬는 그날까지 삶은 지속될 것이니 그것은 나의 뜻이 아닌 거부할 수 없는 자연의 명령이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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