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하단 바로가기
제37회 간호문학상 소설 가작
기사입력 2016-12-16 오전 10:33:50

눈 내리는 밤

최은희(가톨릭대 성빈센트병원)

 

아이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다른 동생을 낳기 위해 진통 중이었다. 이제 겨우 네 살인 유라가 이해하기에는 복잡한 일이었다. 유라가 이모라 부르는 나는 정확히 말하자면 유라 어머니의 친구였다. 내가 늘 일하는 분만실에서 지금 내 친구 은정은 재혼한 남편의 아이를 낳기 위해 진통을 견뎌내고 있는 중이었다. 은정의 남편은 꽤나 자상한 사람으로, 첫 남편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다정다감하고 매너 있는 누가 봐도 좋은 사람이었다. 유라가 갓 돌을 넘겼을 무렵, 쫓겨나듯 이혼당한 은정이었다.

 

“이혼하기로 했어. 유라는 나보고 키우래. 위자료는 줄 수 없고, 양육비만 주겠대.”

은정의 첫 남편은 자주 들락거리던 술집 여자와 바람이 났고, 우리는 겨우 서른이었다. 나는 은정이 이혼과 아이 때문에 인생에 발이 묶이길 원하지 않았다. 남편과 이혼하고 아이를 버리고도 행복하게 잘 사는 사람을 봐왔고, 은정도 그렇게 살기를 바랬다. 미안하지만 지금 분만실 앞 의자에 앉아 내 손을 꼭 붙들고 있는 어린 유라를, 그 때 나는 버리라고 했었다. 하지만 은정은 유라를 남편에게 보내지 않고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일 년 후, 지금의 남편을 만나 재혼하고, 아이도 가졌다. 시댁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며느리였고, 친정은 바로 출발해도 족히 네 시간은 걸리는 곳에 있었다. 덕분에 내가 유라의 보호자로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게 된 것이다. 늘 안에서 일하다 밖에서 기다리려니 기분이 묘했다.

“이모 눈이 와.”

유라가 창 밖을 가리켰다. 어두운 밤 가로등 불빛 사이로 깃털처럼 날리는 눈발. 모두가 기다리는 첫 눈이지만, 나는 이런 날 밤에는 늘 우울하다.

 

아버지는 유머 있고, 항상 사람들을 유쾌하게 해주는 좋은 사람이었다. 동생과 나에게도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따뜻한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할머니의 모진 시집살이를 견딜 수 있었던 것도 아버지가 늘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편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은 내 기억엔 꽤 행복한 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내 마음 속에 우리 부모님은 절대 이혼하지지 않으리란 강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버지가 술을 마시지 않았을 때’라는 전제 조건이 있어야 했다. 술을 마시면 아버지는 괴물로 변했다. 아버지가 밖에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날이면 어머니는 늘 안절부절 못했다. 아버지의 술은 거의 어머니에게 이유 없는 폭력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0.1톤쯤 되는 거구인 아버지가 큰 목소리로 어머니에게 욕을 해대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날이면, 동생과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죽여야 했다. 아버지의 폭력은 천천히 늘어갔다. 우리 자매가 크는 것처럼 아버지 안의 괴물도 점점 자라는 모양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버지가 술을 마신다는 걸 미리 알게 되는 날에는 나는 집에 있는 칼과 가위를 찾아 쌀통에 숨겼다. 그런 것들이 아버지 눈에 띄면 안 된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열세 살 생일 밤, 밖에는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우리 딸 생일 선물은 뭘 해줄까?’하고 묻고 즐거운 얼굴로 출근했던 아버지는 퇴근 길에는 괴물이 되어 돌아왔다. 미처 숨기지 못한 가위로 이유 없이 어머니를 위협하던 아버지를 피하려다, 어머니의 오른 팔에는 긴 상처가 생겼다. 피가 흐르는 팔을 수건으로 대충 동여매고 얼굴에는 눈물 범벅이 된 어머니는 외투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집 밖으로 도망쳤다. 마침 나는 친구들에게 받은 생일선물을 안고 즐겁게 집에 들어오던 차였다. 대문을 박차고 나온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순간,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어머니의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은 어린 내게 말하고 있었다.

‘난 다시 이 집에 돌아오지 않을 거야!’

바깥에는 눈이 주황색 가로등 불빛과 어울려 아름답게 내리고 있었다. 추운 밤, 외투도 제대로 입지 못한 어머니는 상처 입은 팔을 부여잡고 눈 사이로 내달렸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 너머 어둠으로 어머니가 사라진 순간, 설레며 기다린 첫 눈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았다. 열세 살 생일, 그 밤이 내게도 어머니가 있었던 마지막 밤이었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 아버지가 데려온 서너 명의 ‘새어머니’들은 뻔했다. 모두 다른 얼굴을 하고 자기만은 다르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아버지의 아내는 될 수 있지만 우리 자매의 어머니는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당연한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매번 새어머니와 싸우고 또 다른 새어머니를 데려오기를 반복했다. 게다가 술과 폭력에 찌든 아버지가 경제력이 있을 리 없었다. 결국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교를 관두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집안 사정이 악화됐었기 때문이었지만 돈이 없어 대학진학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오로지 대학을 가기 위해서였다. 어머니가 떠난 후로 내 삶은 늘 전쟁이었다. 공부도 그만 둘 수 없었고, 동생도 돌보아야 했으며, 어렵게 번 돈을 아버지로부터 지켜야했다. 열세 살 그 날 이후 어머니는 한 번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헤어지지 않으리라’는 나의 굳은 믿음은 어린아이의 장래희망처럼 그저 바람일 뿐이었던 것이다. 어머니가 13살에 떠났으니, 26살이 되면 내 인생의 반은 어머니 없이 지낸 셈이었다. 그래 26살까지 어머니가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머니는 내 삶에서 완전히 지워버려야지. 처음부터 없는 사람인 것처럼.

 

어렵게 돈을 모으고, 검정고시를 치러 나는 간호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다시 전쟁 같은 대학생활을 마치고 대학병원에 취업했다. 거기서 은정을 처음 만났다. 같은 병동에서 일하게 된 입사동기 은정은 나와는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고운 아이였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는 것들, 여유 있는 웃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마음–심지어 과일 깎는 법까지도-은정은 다 갖추고 있었다. 서로 다른 우리였지만 기댈 곳 없는 고된 병원생활에 곧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아무리 친한 은정이었지만 우리 집 형편이나 부모님이 이혼한 것, 검정고시를 치러 대학에 진학한 내 사정은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내가 25살 어느 더운 여름 날, 휘몰아치는 일에 진땀 흘리며 병동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을 때였다. 같은 근무였던 은정이 누가 찾는다며 병실에 있던 나를 불렀다. 간호사실로 돌아온 나는 순간, 13살 눈 오는 밤처럼 심장이 멈출 것 같았다. 한 살만 더 먹으면 내 인생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 어머니였다.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나의 당황한 눈빛을 읽은 은정을 외면하고 어머니를 이끌어 사람이 적은 복도 끝 엘리베이터 앞으로 갔다.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어머니가 궁금하지 않았고 무슨 얘기를 할지도 궁금하지 않았다.

“여긴 왜 오셨어요?”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는 너무 침착했다.

“넌 우리가 이혼한 게 내 탓이라고 생각하니? 네 아빠 때문이야.”

나는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어머니의 첫 마디는 정답이 아니었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고생했다’, ‘미안하다’가 정답이었다. 책임 회피나 변명은 오답이었다. 그리고 듣고 싶지 않은 어머니의 오답이 이어졌다.

“너도 아빠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지 알잖아. 날 원망하지 마. 나도 피해자야. 재혼하고 아이까지 낳고 사는데도 너희 아빠가 언제 찾아와 망칠지 몰라 늘 불안했어. 가끔 심장이 두근거리고 죽을 것만 같아서 병원에 갔는데 공황장애라더라.”

 

어머니는 간단하게 몇 마디로 10여년의 근황을 풀어놓았다. 재혼도 했고 아이도 낳아서 살았다. 그래서 우리 자매 따위는 잊고 살았던 것일까. 순간 화가 치밀어 올라 무슨 말이든 퍼붓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공황장애’라는 무기까지 들고 와 내 말문을 막아버렸다. 마음의 병이 생겨버린 사람에게 독기 품은 말들을 쏟아 내봤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내가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간에 어머니가 곁에 없어서 힘들었다고. 고등학교를 그만 둘 수밖에 없었던 그 때, 아버지가 술을 마시고 길거리를 헤매다 뺑소니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던 그 때에 어머니가 전화라도 한 통 해줬으면 좋았을 거라는 말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내뱉을 수가 없었다. 누가 볼까 더 길게 같이 마주보고 있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알리 없는 어머니는 가방에서 종이를 꺼내 휴대전화 번호를 적어 건넸다. 나는 연락처를 받아 대강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그 아이들도 네 동생이야. 한 번 같이 만나서 밥이나 먹자.”

다시 한 번 오답이었다. 이쯤 되면 오답이라고 ‘땡’이라고 실로폰이라도 쳐주고 싶었다. 이쯤되면 정답은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도대체 누가 내 동생이란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번호를 주면 내가 연락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그 순간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은정이 환자를 휠체어에 태우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오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자마자 어머니를 밀어넣다시피 엘리베이터에 태웠다. 그리고 어머니는 오답을 말했지만, 난 정답을 말했다.

“저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 아빠, 나, 수진이 모두 자기 인생을 살 뿐이에요. 여긴 제 직장이에요. 앞으로 찾아오지 마세요. 그리고 제 동생은 수진이 하나예요.”

밀어 넣듯 엘리베이터에 태운 어머니에게서 한 걸음 뒷걸음치며 잠시 어딘가에 눈길이 멈췄다. 어머니의 오른팔에 깊게 남겨진, 오래전 그 밤 생긴 기다란 흉터를 보고 말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순간 내 마음에도 쉽게 아물지 않을 상처가 하나 더 생겼다.

얼마 후, 나는 부서이동 신청을 했다. 표면적으로는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찾아와도 들어올 수 없는 곳에서 일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몇 달 후 새 생명이 태어나는 곳, 허락된 사람만 들어올 수 있는 분만실에서 일하게 되었다.

 

신부대기실에 앉아있던 은정은 내가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고왔다. 은정의 결혼식은 내게는 너무나 부러운 모습이었다. 호남형에 경제력까지 갖춘 멋진 남편, 은정을 예뻐해주는 시댁 어른들. 무엇보다 부러웠던 건 시댁에 눈치 볼 필요 없는 완벽한 가정환경. 나는 어느새 드라마에 나오는 신데렐라라도 보는 것처럼 동경의 눈빛으로 은정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탄한 행복의 코스를 밟은 은정은 결혼하고 얼마 후 임신 소식을 알려왔다.

“넌 분만실에 있으니까, 초보 엄마한테 많이 알려줘야 돼.”

그러나 아이를 품고 행복해하던 은정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유라를 낳고 몸조리가 끝나기도 전에 남편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은정은 내색하지 않고 참았다. 유라 때문이었다. 하지만 유라 때문에 참았던 은정도 이혼을 요구하는 뻔뻔한 남편 앞에서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은정 남편의 잘생긴 얼굴이 비열하게 일그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은정을 아끼던 시댁 어른들도 위자료 앞에서는 철면피로 변신했다. 이상한 가부장적 기품을 자랑하던 그들에겐 아들이 아닌 유라도 환영받지 못했다.

 

일 년 넘게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은정이, 처음으로 이혼 결심을 알리면서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혼하기로 했어. 유라는 나보고 키우래. 위자료는 줄 수 없고, 양육비만 주겠대. 유라 내가 키울 거야. 내 아가가 그 집에서 홀대받고 큰다고 생각하면 난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엄마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해.”

나는 은정에게 닥친 이 불행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 팔에 있던 흉터가 문득 떠올랐다.

“너 전에 병동에서 우리가 근무할 때, 어떤 아주머니가 나 찾아 왔던 거 기억나? 사실 그 분 우리 엄마야. 우리 부모님은 내가 어렸을 때 이혼했고, 내 인생엔 엄마가 있었던 날보다 없었던 날이 더 많았어. 우리 엄마는 집을 나가고 한 번도 우리한테 연락하지 않았어. 그냥 그대로 재혼하고 아이도 낳고 그렇게 살았대. 나이가 들수록 알겠더라고. 어렸을 때는 왜 우릴 찾아오지 않을까 원망한 적도 있었는데, 그건 엄마 인생이었어. 엄마 인생에 자식을 무조건 책임져야 한다는 계약 같은 건 없어. 그리고 아이들도 다 알아서 크고 크면 이해하게 될 거야. 그러니까 너도 유라, 남편한테 보내고 새 삶을 살아.”

담담하던 은정의 눈에서 후두둑,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난 내 아가는... 보낼 수가 없어. 잘 키울 수 있을지 확신도 없고 아빠 없이 키웠다고 원망 받을지도 모르지만 보내고 싶지 않아.”

유라를 키우겠다는 은정을 바라보며 눈 내리는 밤 어둠 속으로 도망치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어머니는 도망쳤지만 은정은 도망치지 않았다. 나는 아니라고는 했지만 어둠 속으로 사라졌던 어머니를 내내 미워했었다. 그러면서도 은정에게는 유라를 버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정말 유라가 크면 온전히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나처럼 어머니를 미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리워하며 살지도 모른다. 괜찮은 것처럼 살다가도 어머니가 떠났다는 분노는 아버지의 괴물처럼 불쑥 나타나 나를 괴롭혔다. 이제 걸음마를 뗀 어린 유라가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니 은정을 설득할 자신이 없어졌다. 그리고 마음에 긴 상처가 생겼는데도 은정은 유라를 두고 떠나지 않았다. 문득 어머니가 있는 유라가 부러워졌다.

 

“은정이 네 인생이니까. 그게 유라한테도 좋겠지. 난 유라가 부럽다.”

은정의 이혼은 진흙탕 싸움이었다. 더 이상 남편과 마주치기가 싫었던 은정은 모든 걸 버리고 최대한 빨리 이혼했다. 위자료는 없었고 주기로 했던 양육비도 반 년만에 끊겼다. 남편은 한 번도 유라를 찾지 않았다. 결혼하면서 병원을 관뒀던 은정은 유라를 키우기 위해 다시 작은 의원에 취업했다. 곱게 자란 은정이 잘 버틸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건 나의 기우였다. 은정은 씩씩하게 유라와 함께 힘든 시간을 이겨냈다. 그리고 얼마 후 유라까지 사랑해주는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은정이 두 번째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나는 반대했었다.

“너 벌써 다시 시작하고 싶니? 그런 확신은 어디서 나오는 거야?”

“유라를 딸처럼 생각해주는 사람이야. 나도 유라한테 온전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어. 그리고 영진씨 좋은 사람이야. 한 번 실패했다고 움츠려서 살고 싶지 않아. 내 인생에 벌써가 어딨어?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확신이 들면 다시 시작해야지. 또 헤어질 수도 있지만 그럴까봐 시작도 못하면 어떡해. 그럼 나는 평생 이혼녀인 채로 살아야 하는 거야?”

은정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은정이 유라를 키우겠다는 걸 반대할 때는 스스로의 인생을 찾으라며 반대했던 내가 이번에는 스스로의 인생을 찾겠다는 은정을 만류하고 있었다. 결국 은정은 영진과 재혼했다. 영진 집안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 은정은 결혼식 없이 조촐히 살림을 꾸려 새 삶을 시작했다.

 

유라는 솜털처럼 날리는 눈꽃이 신기한 모양이었다. 작은 손가락으로 눈꽃송이를 가리키며 까르르 웃었다. 엄마 아빠와 떨어져 풀이 죽어있던 아이는 어느새 다시 그 나이 또래로 돌아왔다. 유라가 눈사람을 만들러 가자는 바람에 진땀을 뺐지만 창문에 입김을 불어가며 그림을 그려주자 아이는 다시 그림 그리기에 푹 빠져버렸다. 작은 입으로 호호 불어가며 유라는 창문에 네 사람을 그려 넣었다.

“유라, 엄마, 아빠, 아가야.”

유라의 말에 나도 모르게 부끄러워졌다. 유라에게는 곧 태어날 아기까지 온전히 가족이었다. 나는 내심 은정과 영진 사이에 아이가 생겨 유라에게 소홀해질까봐 걱정하던 참이었다. 아버지가 데려왔던 새어머니들은 늘 그랬기 때문에 내 걱정에는 약간의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하지만 내 걱정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어린 유라는 가족에 대한 투명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유라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준 은정과 영진 덕분일 것이다.

 

“오래 기다렸죠? 우리 둘째 딸도 건강하게 태어났어요.”

분만실에서 나와 순산을 전하는 영진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아이가 태어난다는 거 정말 감동이에요. 유라야 동생 보러 가자. 수영씨도 같이 가요.”

영진의 권유에도 나는 가족만의 시간을 위해 밖에 있겠다고 했다. 사실은 분만실에 있는 은정을 보면, 어머니의 삶의 한 순간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까봐 거절한 것이었다. 하지만 영진은 나를 굳이 잡아끌어 은정에게로 데려 갔다. 산고 때문에 진이 다 빠진 은정이었지만 유라를 보자마자 활짝 미소를 지었다. 은정은 나에게도 환한 눈인사를 보냈다. 은정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내 기억에 늘 남아있는 젊은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분만실 앞 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가로등 불빛을 어지럽히듯 날리는 눈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사실 나는 눈 내리던 날 어둠속으로 도망친 어머니를 한 번도 용서한 적이 없었다. 크면서는 어머니의 인생이 있으니 그럴 수 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그저 말이었다. 연락 한 번 없던 어머니를 원망하지 않은 날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언젠가 은정의 말처럼 평생 이혼녀로 살 수 없었을 테고, 살다보니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아이도 낳았을 것이다. 내가 은정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었다면, 여자로서의 어머니가 예외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솔직하자면 나는 늘 어머니를 그리워했다.

 

머릿속이 정리되고 스스로에게 솔직해지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눈물에 어른거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창밖으로 내리는 눈이 오랜만에 아름다워 보였다. 나는 가방 속 지갑을 꺼내 깊숙이 넣어두었던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몇 년 째 갖고만 다녔지 한 번도 걸어본 적 없는 어머니의 전화번호였다. 조심스레 번호를 누르고 심호흡을 한 번 한 뒤 통화버튼을 눌렀다.

휴대폰 너머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수영이.”

눈 내리는 밤,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 어머니를 이십 년 만에 찾았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