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7-01-31 오전 09:48:10

　수간호사 시절 일이다. 당시 분만 휴가를 마치고 첫 출근을 한 날 아침, 나는 간호사들로부터 까다롭고 성질이 괴팍한 환자가 입원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전신의 70%가 화상으로 뒤덮인 환자는 찾아오는 사람 하나 없이 외롭게 투병하고 있었다. 통증으로 인해 고함을 치고, 간호사에게 욕을 퍼붓기가 일쑤였으며, 식사시간에는 반찬이 형편없다고 식판을 엎질러 버리는가 하면, 컵을 던져 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얼굴은 흉터로 일그러져 있고 부분적으로 남아있는 유난히 짙은 눈썹이 더욱더 괴팍한 인상을 풍겼다.

　간호사들조차 곁에 다가가기를 꺼려하는 그 환자를 보며 `내가 고약한 성미와 고집을 꺾어 봐야지'하는 각오로 간호를 시작했다. 하지만 제대로 씨름할 겨를도 없이 그는 며칠 지나지 않아 패혈증으로 인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에도 찾아오는 이 하나 없이 간호사들만이 자리를 지켜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했다.

　그의 죽음을 지켜보며 내가 처음 만난 화상환자가 떠올랐다. 전기화상으로 입원한 40대 초반의 가장이었다. 심정지가 네 번이나 일어난 환자라 간호사들은 그의 소생을 바라며 정성을 쏟았고 퇴근을 하면서도 발걸음과 시선을 쉽게 떼지 못했다. 나 또한 집에 가서도 이상한 예감이 들면 병원으로 전화를 해보고, 병원에서 전화가 오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가 하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했다. 그가 기적처럼 살아났을 때 행복이란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벅차오르는 감동을 느꼈다.

　갑작스런 환자의 죽음 앞에서 첫 번째 화상환자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됐던 건 처음처럼 간절하고 순수한 마음을 그에게 베풀지 못한, 권위와 기세로 무장한 내 마음에 대한 죄책감, 그리고 퇴색해버린 사랑과 열정 때문이었던 것 같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초심을 잊고 지낸 것 같아서다.

　한 환자는 생명에 대한 경외심을 잊은 데 대한 반성을 하게 해줬고, 또 다른 환자는 간호사가 얼마나 행복한 직업인지 깨닫게 해줬다. 지금도 중환자실에는 생사를 넘나들며 고통 속에서 헤매는 환자가 여럿이다. 후배들이 나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말해주고 싶다. 권위와 기세가 아닌 진실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라고.

손옥란(베스티안병원 간호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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