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8-05-07 오전 09:49:37

　병원에서 일하던 시절, 몸도 마음도 지쳐 있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나를 좀 알아봐 달라고 안달하고 떼쓰는 철부지였다. 아가씨라는 호칭에서부터 별것 아닌 일에 자존심을 다치기가 부지기수라 항상 내 처지를 한탄하며 외로움에 시달렸다.

　임상을 떠나 보건교사로 일한지 10여년. 간호사에서 선생님으로 호칭은 바뀌었지만 스스로를 할퀴고 상처 내는 생활은 그대로 반복됐다. 마음 속 짐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던 찰나 캐나다 밴쿠버로 이민 간 친구가 마음수련 프로그램을 권유했다.

　마음수련을 하면서 비좁은 나만의 세상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다. 마음을 비우면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주변 사람들의 고마움도 깨닫게 됐다. 마음수련의 핵심은 몸과 마음은 하나이고, 마음으로부터 모든 병이 출발한다는 것이다. 명쾌한 진리를 깨닫고 나니 괜한 좌절감으로 숱한 날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사람을 돌보겠다며 정작 내 마음이 병들어가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보건실을 찾는 학생들 앞에서 난감할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심인성 증상을 호소하는데 매번 약을 줄 수도 없고, 플라시보 효과도 한계가 있다. 상담도 해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했다.

　마음수련을 통해 내가 체험한 것들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학생들에게 간단한 수련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별 증상이 없는데도 아프다는 아이들이야말로 털어놓기 힘든 마음의 짐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예상대로 아이들의 마음에도 응어리가 많았다. 약을 주기보다는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도록 돕고, 지지하다보니 보건실 단골이 점점 줄어갔다.

　모든 아이들에게 고루 도움을 주고 싶어 보건수업 시간을 할애해 `10분 마음 버리기 활동'을 시작했다. 교사와 학생, 너나할 것 없이 마음의 상처를 버리고 비워나가며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하는 소중한 시간이 됐다.

　각자 색안경을 끼고 보면 매일 보는 사람이라도 본 모습을 볼 수 없다. 우리 간호인들부터 복잡한 마음을 깨끗하게 비우고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수용, 이것이야말로 마음이 큰사람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간호의 시작일 것이다.

박필선(창원 상남초 보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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