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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회 간호문학상 소설 가작
또 하나의 당신을 만들어 드립니다.
기사입력 2009-01-06 오전 10:00:42
- 오 연 화
1
그 날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간 윤리를 거역하는 ‘그런’ 일을 실행할 만큼 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속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날이 닥쳐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남들과 똑같이 나약하고, 신념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지,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가치관쯤은 절망 앞에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고 마는 그저 그런 흔해 빠진 인간일 뿐이었다. …내 아이가 죽어간다는데. 그래, 나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때의 나는 그저 불안에 절어 벼랑 끝 한 가닥 남은 위태위태한 줄다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그래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변명하겠다. 그저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할 뿐인 불쌍한 엄마였을 뿐이었다고.
2
“azsc-x176354 바이러스입니다. 발생원인도, 경로도 자료가 전혀 전무한 신종 바이러스입니다. 고로 따님의 경우 지금으로선 치료 방법도 약도 전혀 없다는 말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옅은 녹색 가운을 입은 박사가 전혀 안타깝지 않은 표정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헌데, 176354라는 숫자는 따님에게서 채취한 혈액으로 수억만 번의 세포융합 끝에 바이러스 균이 정확하게 나타난 염색체 배열번호를 나타낸 것입니다. 컴퓨터로 이 숫자를 집어넣어 반복 실험을 했더니 176354번째 마다 동일한 패턴의 배열을 보였습니다. 이 말인 즉.”
박사가 잠시 엷은 한숨을 밭아내며 코끝에 걸린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발전 경향을 실험을 통해 알아낼 수 도 있다는 겁니다.”
오, 하느님. 나는 용수철처럼 박사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 말씀은 치료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다만.”
다만? 두 손을 모아 오,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죽여 외치던 나는 박사의 말 앞에 다시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만이라면? 순간 날카로워지는 눈빛을 느꼈는지 박사가 살금 쥔 주먹으로 헛기침을 밭아내며 말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일정 용량 이상 따님의 혈액이 주기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투여하는 약의 성능도 처음부터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인 즉. 나는 탁 한숨을 뱉어냈다. 내 딸을 놓고 실험을 하시겠다? 내 딸을 몰모트 취급하다니. 박사가 어느새 흘러내린 안경을 되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 실험을 통해서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azsc-x176354 바이러스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동의하시면 이 바이러스 정식네임을 따님의 이름을 따서 학회에 보고할…….”
내 딸의 이름을 따서? 그럼 지민 바이러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박사를 쳐다보았다.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JM바이러스라고.”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의 모니터를 확 밀어버렸다. 모니터가 와장창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져 박살이 났고 또 다시 흘러내린 안경너머로 잔뜩 움츠린 박사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그를 잡아먹을 듯 외치고 돌아섰다.
“병원비에 포함 청구하세요!”
오, 지저스. 삼십 평생을 훌쩍 넘기고 살아오면서 종교 한번 없이 살았던 내가 이토록 신을 불러대기는 처음이었다.
*
내가 어릴 적에는 2020년이 되면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루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알약 세알이면 하루에 필요한 인간의 열량 요구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고 또 늙어도 늙지 않고 죽음이란 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으며 언제까지나 불로장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2020년에 서른넷인 나는 여전히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꽉꽉 막힌 교통체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아침, 저녁으로 쌀을 안치고 된장국을 끓여대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눈가에는 주름이 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발전한 것이라고는 환경오염과 하루에도 몇 십 건씩이나 뉴스로 보도되는 질병 바이러스뿐이었다. 처음엔 공포에 덜덜 떨던 사람들도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를 계절마다 바뀌는 트렌드쯤으로 여기는 모양인지 반응도 없어졌다. 그저, 내가 걸리지 않으면 그 뿐이라 생각할 뿐.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박사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언니가 말했다. 대충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눈치를 챈 듯 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 손만 꼭 잡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직장생활을 계속 하길 원했던 나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우리 지민이를 키워준 고마운 언니. 나는 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딸이 입원해 있는 격리 치료실로 갔다. 창문 밖에서 칸칸이 쳐진 침대의 투명 커튼 너머 누워있는 지민이를 보자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나 화장실 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이지만 역시 ‘동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동물’임은 변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고프면 먹어야하고 먹으면 싸야하고.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훌쩍거리다 갑자기 배가 아프니 눈물이 쏙 말랐다. 눈치 없는 대장(大腸) 같으니라고. 간사하고 영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충실한 인간. 나는 부랴부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내 아이를 위한 눈물과 전혀 매칭 되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뜻밖에 희망을 발견했다. 「장기 매매 ․ 인간 복제 - 또 하나의 당신을 만들어 드립니다.」또 하나의 당신? 나는 벽에 붙은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그리고 행여 누가 볼세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
2015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세계보건기구의 시류를 따라 인간 복제 금지 법안을 통과 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현재, 음지에서 행해지는 복제에 관한 과학기술은 더욱 발달하였고 날로 그것을 이용한 범법행위는 한층 대담해졌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인간 심리가 말이죠, 이 복제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대도 과언이 아니죠.”
킬킬거리며 웃는 남자의 벌린 입술 사이로 빨간 고춧가루가 끼어 있다. 나는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사무실에 나는 겁도 없이 혼자서 이 정체모를 남자를 만나러 와 있었다. 남자가 웃음을 거두고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나는 다급해져서 물었다.
“정말로 내 아이를 복제 할 수 있나요? 그것도 겨우 한 달이면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구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의 혈액이 필요해요. 그리고 급속 복제기 때문에 비용도 만만치 않구요. 어떻게 돈은……?”
“돈 걱정은 마세요. 우리 아이만 반드시 살릴 수 있다면.”
다짐하듯 내밭는 내 대답에 남자가 다시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거래가 성립되겠군요. 아주머니의 아이와 똑같지만 절대로 건강한 아이를 만들어드리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남자는 건강한 아이의 복제를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인자를 미리 제거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의 피를 먼저 뽑아 융합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사무실 옆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 수술침대에 누웠다. 남자는 매운 내가 나는 알콜 솜으로 내 팔을 휘어잡고 벅벅 문질러대더니 굵은 바늘로 가차 없이 혈관을 푹 찔렀다. 바늘이 혈관보다 굵었던 건 아닐까. 나는 쇼크로 기절했다.
3
「엄마!」
나를 부르는 지민이의 목소리. 지민아! 우리 지민이가 어디서 나를 부르는 거지? 긴 복도. 문이 즐비하게 늘어선 텅 빈 건물이다. 여기가 어디야? 두리번거리다 저만치 복도 모퉁이를 돌아 아장아장 나를 향해 걸어오는 지민이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
세 번째 문을 열고 또 나를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지민이.
「엄마! 엄마! 엄마!」
이런. 수많은 문이 열리고 나를 부르는 지민의 목소리가 되돌이표 노래처럼 반복되어 흐른다. 엄마, 엄마, 엄마. 수많은 지민이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가 두 팔을 벌리고 섰다. 그래, 엄마에게 오렴. 질끈 눈을 감는다. 그런데 한참 뒤 눈을 뜨자 텅 빈 눈 앞, 텅 빈 내 팔. 뒤를 돌아보자 나와 똑같이 생긴 수많은 여자들이 수많은 지민이를 각자 한명씩 안고 있다. 내 딸, 우리 지민이!
“지민아!”
눈을 뜨자 땀에 흠뻑 젖은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는 언니가 보였다. 헉헉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언니가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괜찮아? 악몽을 꿨나보구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쓰러져서 웬 남자한테 업혀 들어오는데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남자? 나는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잠시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화들짝 아까 주사바늘을 꽂았던 팔의 옷소매를 걷어보았다. 시뻘건 멍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남자가 돈은 계좌로 넣어달라던데, 전화번호로 넣으면 된다고. 무슨 거래가 어쩌고 하더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언니의 입을 통해 나오는 그 남자의 정체. 그럼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내 팔에서 피를 뽑았고 곧 내 아이의 복제 인간을 만들어다 줄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끔찍한 꿈을 꾸었지만 곧 나는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지민이와 함께.
“언니, 병원에 가야겠어. 우리 지민이가 보고 싶어.”
지민이를 쏙 빼박은 그 아이가 오면, 그 아이가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 줄 수 있을 만큼 다 자라면 우리 지민이는 다시 건강해 질 수 있겠지. 나는 지민이가 이미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4
그 남자가 내 팔에서 피를 뽑아간 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찢어질 듯 한 초인종 소리가 잠을 깨웠다. 문 밖에는 제법 커다란 광주리가 있었고 그 속에는 새근새근 단잠에 빠진 볼이 발그레한 아기가 있었다. 나는 그 아기를 보고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지민이의 백일 때 모습과 흡사한 이 아기가 바로 그 복제 인간인 모양이었다. 광주리에는 카드가 있었고 카드에는 한 번 더 남자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얼른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숨을 쉴 때마다 단 내를 풍겼다. 지민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밤에 깨서 잘 울지도 않고 우유도 잘 먹고 웃기도 잘 웃었다. 또 급속 복제라더니 성장 속도가 정말 빨랐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는 집에 온지 일주일이 되자 두 돌은 지난 아이처럼 더듬더듬 말을 따라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온 집안을 헤집어놓았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우리 지민이 너무 예쁘지.”
젖병을 물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를 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언니가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지민이는 병원에 있잖아.”
“그렇지만 지민이랑 너무 똑같아. 누가 진짜 지민이인지 모를 정도로.”
“쓸데없는 소리 한다. 이 애는 그저 지민이의 복제품일 뿐이야.”
“하지만…….”
“그만해. 누가 뭐래도 지민이는 하나뿐이야. 똑같이 생겼다고 이 아이가 지민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난 병원에 다녀올게.”
언니는 매섭게 말을 하고 일어나버렸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민이를 위해 건강하게 만들어진 아이. 이 속도로 크면 다음 주 쯤엔 지민이만큼 다 자랄지도 모른다. 그러면 계획대로 지민이는 이 아이의 건강한 장기들을 바꿔치기 할 수 있다. 그 다음엔? 갑자기 아이가 몸을 뒤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른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등을 토닥이는 내 손길에 아이의 울음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의 건강한 몸과 지민이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몸을 바꾸고 나면 그 다음엔? 나는 그 후의 일들이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아가… 아가…….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했다. 아가, 너무 빨리 자라지 말려무나.
*
내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무섭게 빨리 성장했다. 집에 온지 이주가 지나자 4살인 지민이만큼 자랐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있는 아이를 보는 느낌도 새로웠다. 제법 말을 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는지 아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도 그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시간이 늘어났다. 때문에 자연스레 지민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는 횟수도 줄었다. 매일같이 혼자 병원을 다녀오는 언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혀를 끌끌 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어차피 오래 보지도 못할 텐데 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지민이보다 이 아이에게 더 향하는 마음을 모른 척 숨겨놓았다.
“수술 날짜 잡았어.”
아이를 데리고 블록 쌓기를 하고 있던 내 뒤로 언니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하며 언니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언니가 한 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수술 날짜 잡았다구.”
당연한 수순이었건만, 계획했던 대로 이 즈음해서 수술날짜를 잡는 것이 맞는데도 나는 전혀 뜻밖의 말을 들은 것 마냥 충격을 받았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아이는 나를 보며 ‘엄마’라고 부르며 까르르 웃었다.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가 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지금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이식하는데 문제가 될지도 몰라. 아이가 너무 커버리면 말이야. 얘, 듣고 있니?”
“언제로 잡았어?”
“이번 주말.”
이번 주말이라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언니는 내 그런 반응을 예상했던 듯 말을 잘라 섰다.
“갑자기 아니야,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이야, 오히려 늦었어. 내일 바로 저 아이 입원시킬거야.”
“언니!”
“정신 차려! 쟨 복제품일 뿐이야. 지민이는 지금 병원에 있고,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가고 있어. 넌 도대체 엄마라면서……!”
언니는 화가 난 듯 소리를 치다 입을 다물고 일어섰다.
“잊지 마. 저 아인 지민이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지민이가 아니고는 존재의 의미가 없어. 복제품은 그런 거야. 명심하라구.”
*
하지만 시작이 어떠했든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뛰어 넘으려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치고 마침내 극복한 뒤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되는 거겠지.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지금 엄마로써 갈등의 기로에 서 있었다. 병원에 있는 지민이와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이 아이, 둘 중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들쳐 안았다. 아침이 되면 이 아이는 뭣 모른 채 병원으로 가서 차가운 수술대에 누울 준비를 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순 없었다. 이 아이도 틀림없는 지민이었다.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병원은 조용했다. 지민이가 입원중인 격리치료실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쩍 말라 잠든 지민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물이 나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돌아 나왔다. 그래도 지민이는 병원에 있으니까, 있다 보면 뭔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겠지. 언니, 지민이를 부탁해. 나는 그 한마디가 적힌 쪽지를 놓고 아이를 테리고 집을 나왔다. 아침이 되면, 그 쪽지를 본 언니는 난리가 나겠지.
5
울어대는 휴대전화를 강에다 던져버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얼마쯤 집에서 가져온 돈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잘 곳을 마련해가며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하지만 언니는 어떻게 알고 나타났다. 이제껏 그렇게 무서운 언니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달렸다. 뺏길 수 없어. 지민이를, 그렇게 아픈 지민이를 포기하고 데려온 아이였다. 이제 와서 뺏길 수는 없었다.
“얘!”
그 때, 날카로운 언니의 비명소리. 그 순간 나는 눈앞으로 덮쳐오는 커다란 트럭을 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방이 고요해졌고 오로지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그렇게-거기서 나는 차라리 모든 게 끝났어야 했는데.
6
“……아하, 이제 시각 센서만 연결하면 다시 문제없어요. 이 모델은 어차피 장기배양이 다 되어있는 제품이라 언제든지 신제품으로 이식할 수 있어요. 냉동 보관보다야 이렇게 로봇 인간 속에 넣어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도록 계속 작동시켜주는 게 나중에 직접 고객님의 몸에 이식할 때도 거부감 없이 안착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어날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눈보다 귀가 먼저 깨어났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 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들었다.
“지난 한달 간의 기억은 지워주세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그리고 우리 지민이를 딸이라고 기억하게 했던 것도 지워주세요. 아이에게 해코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놨더니만. 역시 로봇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언니였다. 그런데 저게 다 무슨 소리일까. 나는 찬찬히 눈을 떴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진짜 인간 같은 로봇이 나오고 또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내도 모성이라는 감정이 누가 가르쳐준다고 그게 되는 건가…….”
사내가 말을 하며 무심코 나를 돌아보다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사내의 뒤편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얼굴의 피부가 반쯤 날아갔고 그 아래로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엉겨있었다.
“얘!”
입을 다문 사내에 이어 언니의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언니?”
돌아 본 내 눈에 비친 언니의 얼굴은 또 한 번 나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제껏 내 얼굴인 줄 알았던 그 얼굴은 마주 서 있는 언니의 얼굴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다 얼굴주위로 엉겨있는 전선을 마구 뜯어내는 나를 보고 사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메모리칩이 망가진 모양이군요. 특정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던 기능이 망가졌어요. 본인이 로봇이라는 것도 자각한 것 같고…….”
불꽃이 튀었다. 나는 곧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내가 다가와 굽어져 있던 팔 다리를 편안하게 펴서 나를 눕혀주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에이, 못쓰겠는걸요. 메모리칩을 다시 복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 모델로 바꾸는 게 훨씬 돈이 덜 들겠어요. 장기 배양은 되어있으니까 모델만 바꾸면 되겠는데?”
사랑하는 언니. 고마운 언니. 무서운 언니.
“그래요. 나도 그게 마음이 편하겠네요.”
언니가 돌아섰다. 너무나 간단히. 언니가 돌아서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사내는 내 목 뒤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 배터리를 꺼내버렸다.
“참, 아이 수술은 잘 되었나요?”
“다행이.”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무심한 발소리와 함께 찬찬히 잦아들었다. 나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천천히 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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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되기 전까지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다. 신의 섭리를 거스르고 인간 윤리를 거역하는 ‘그런’ 일을 실행할 만큼 나는 무지하고 이기적인 속물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날이 닥쳐서야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남들과 똑같이 나약하고, 신념 따위는 개나 물어가라지, 삶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어떤 가치관쯤은 절망 앞에 송두리째 내던져 버리고 마는 그저 그런 흔해 빠진 인간일 뿐이었다. …내 아이가 죽어간다는데. 그래, 나는 온전한 정신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 때의 나는 그저 불안에 절어 벼랑 끝 한 가닥 남은 위태위태한 줄다리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고, 그래서 ‘그런’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고 변명하겠다. 그저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라 주저할 뿐인 불쌍한 엄마였을 뿐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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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sc-x176354 바이러스입니다. 발생원인도, 경로도 자료가 전혀 전무한 신종 바이러스입니다. 고로 따님의 경우 지금으로선 치료 방법도 약도 전혀 없다는 말이죠.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옅은 녹색 가운을 입은 박사가 전혀 안타깝지 않은 표정으로 건조하게 말했다.
“헌데, 176354라는 숫자는 따님에게서 채취한 혈액으로 수억만 번의 세포융합 끝에 바이러스 균이 정확하게 나타난 염색체 배열번호를 나타낸 것입니다. 컴퓨터로 이 숫자를 집어넣어 반복 실험을 했더니 176354번째 마다 동일한 패턴의 배열을 보였습니다. 이 말인 즉.”
박사가 잠시 엷은 한숨을 밭아내며 코끝에 걸린 안경을 손가락으로 치켜 올리더니 말을 이었다.
“이 바이러스의 발전 경향을 실험을 통해 알아낼 수 도 있다는 겁니다.”
오, 하느님. 나는 용수철처럼 박사의 앞으로 바짝 다가가 다급하게 물었다.
“그 말씀은 치료책을 찾아낼 수 있다는 거군요?”
“물론입니다. 다만.”
다만? 두 손을 모아 오, 주여 감사합니다, 하고 소리죽여 외치던 나는 박사의 말 앞에 다시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만이라면? 순간 날카로워지는 눈빛을 느꼈는지 박사가 살금 쥔 주먹으로 헛기침을 밭아내며 말했다.
“치료를 받는 동안 일정 용량 이상 따님의 혈액이 주기적으로 필요합니다. 또한 투여하는 약의 성능도 처음부터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인 즉. 나는 탁 한숨을 뱉어냈다. 내 딸을 놓고 실험을 하시겠다? 내 딸을 몰모트 취급하다니. 박사가 어느새 흘러내린 안경을 되 치켜 올리며 말했다.
“그 실험을 통해서 앞으로 발생할 수많은 azsc-x176354 바이러스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 겁니다. 만약 동의하시면 이 바이러스 정식네임을 따님의 이름을 따서 학회에 보고할…….”
내 딸의 이름을 따서? 그럼 지민 바이러스? 나는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흘리며 박사를 쳐다보았다.
“이름의 이니셜을 따서 JM바이러스라고.”
더 들을 것도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위의 모니터를 확 밀어버렸다. 모니터가 와장창 책상 아래로 굴러 떨어져 박살이 났고 또 다시 흘러내린 안경너머로 잔뜩 움츠린 박사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그를 잡아먹을 듯 외치고 돌아섰다.
“병원비에 포함 청구하세요!”
오, 지저스. 삼십 평생을 훌쩍 넘기고 살아오면서 종교 한번 없이 살았던 내가 이토록 신을 불러대기는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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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에는 2020년이 되면 자동차가 비행기처럼 하늘을 날아다니고 하루 세끼 밥을 먹지 않아도 알약 세알이면 하루에 필요한 인간의 열량 요구량을 충분히 채울 수 있고 또 늙어도 늙지 않고 죽음이란 건 얼마든지 피해 갈 수 있으며 언제까지나 불로장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2020년에 서른넷인 나는 여전히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아침이면 꽉꽉 막힌 교통체증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아침, 저녁으로 쌀을 안치고 된장국을 끓여대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눈가에는 주름이 늘어가고 있었다. 오히려 그 때보다 더 발전한 것이라고는 환경오염과 하루에도 몇 십 건씩이나 뉴스로 보도되는 질병 바이러스뿐이었다. 처음엔 공포에 덜덜 떨던 사람들도 이제는 신종 바이러스를 계절마다 바뀌는 트렌드쯤으로 여기는 모양인지 반응도 없어졌다. 그저, 내가 걸리지 않으면 그 뿐이라 생각할 뿐.
“괜찮아. 방법이 있을 거야.”
박사의 연구실에서 나오는 나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며 언니가 말했다. 대충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눈치를 챈 듯 언니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내 손만 꼭 잡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직장생활을 계속 하길 원했던 나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우리 지민이를 키워준 고마운 언니. 나는 언니의 손을 꼭 붙잡고 딸이 입원해 있는 격리 치료실로 갔다. 창문 밖에서 칸칸이 쳐진 침대의 투명 커튼 너머 누워있는 지민이를 보자 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이 와중에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나 화장실 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적이지만 역시 ‘동물’이다. 시대가 바뀌어도 ‘동물’임은 변하지 않는다. 때가 되면 배가 고프고 고프면 먹어야하고 먹으면 싸야하고. 곧 죽을지도 모르는 아이 때문에 훌쩍거리다 갑자기 배가 아프니 눈물이 쏙 말랐다. 눈치 없는 대장(大腸) 같으니라고. 간사하고 영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본능에 충실한 인간. 나는 부랴부랴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곳에서, 내 아이를 위한 눈물과 전혀 매칭 되지 않는 그 곳에서 나는 뜻밖에 희망을 발견했다. 「장기 매매 ․ 인간 복제 - 또 하나의 당신을 만들어 드립니다.」또 하나의 당신? 나는 벽에 붙은 스티커를 손톱으로 긁어서 뜯어냈다. 그리고 행여 누가 볼세라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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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대한민국 국회에서는 인간복제를 반대하는 세계보건기구의 시류를 따라 인간 복제 금지 법안을 통과 시켰다. 하지만 그로부터 5년 뒤인 현재, 음지에서 행해지는 복제에 관한 과학기술은 더욱 발달하였고 날로 그것을 이용한 범법행위는 한층 대담해졌다.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인간 심리가 말이죠, 이 복제기술을 발전시키는데 아주 큰 역할을 했대도 과언이 아니죠.”
킬킬거리며 웃는 남자의 벌린 입술 사이로 빨간 고춧가루가 끼어 있다. 나는 갑자기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두컴컴하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사무실에 나는 겁도 없이 혼자서 이 정체모를 남자를 만나러 와 있었다. 남자가 웃음을 거두고 나를 아래 위로 훑어보았다. 나는 다급해져서 물었다.
“정말로 내 아이를 복제 할 수 있나요? 그것도 겨우 한 달이면 장기 이식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성장속도가 빠르다구요?”
“물론입니다. 하지만 아이와 어머니의 혈액이 필요해요. 그리고 급속 복제기 때문에 비용도 만만치 않구요. 어떻게 돈은……?”
“돈 걱정은 마세요. 우리 아이만 반드시 살릴 수 있다면.”
다짐하듯 내밭는 내 대답에 남자가 다시 껄껄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거래가 성립되겠군요. 아주머니의 아이와 똑같지만 절대로 건강한 아이를 만들어드리죠. 자, 이쪽으로 오세요.”
남자는 건강한 아이의 복제를 위해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유전인자를 미리 제거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나의 피를 먼저 뽑아 융합을 시켜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사무실 옆에 딸린 방으로 들어가 수술침대에 누웠다. 남자는 매운 내가 나는 알콜 솜으로 내 팔을 휘어잡고 벅벅 문질러대더니 굵은 바늘로 가차 없이 혈관을 푹 찔렀다. 바늘이 혈관보다 굵었던 건 아닐까. 나는 쇼크로 기절했다.
3
「엄마!」
나를 부르는 지민이의 목소리. 지민아! 우리 지민이가 어디서 나를 부르는 거지? 긴 복도. 문이 즐비하게 늘어선 텅 빈 건물이다. 여기가 어디야? 두리번거리다 저만치 복도 모퉁이를 돌아 아장아장 나를 향해 걸어오는 지민이가 보인다. 그런데.
「엄마!」
세 번째 문을 열고 또 나를 부르며 아장아장 걸어 나오는 지민이.
「엄마! 엄마! 엄마!」
이런. 수많은 문이 열리고 나를 부르는 지민의 목소리가 되돌이표 노래처럼 반복되어 흐른다. 엄마, 엄마, 엄마. 수많은 지민이가 쏟아져 나온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다가 두 팔을 벌리고 섰다. 그래, 엄마에게 오렴. 질끈 눈을 감는다. 그런데 한참 뒤 눈을 뜨자 텅 빈 눈 앞, 텅 빈 내 팔. 뒤를 돌아보자 나와 똑같이 생긴 수많은 여자들이 수많은 지민이를 각자 한명씩 안고 있다. 내 딸, 우리 지민이!
“지민아!”
눈을 뜨자 땀에 흠뻑 젖은 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는 언니가 보였다. 헉헉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언니가 등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괜찮아? 악몽을 꿨나보구나.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쓰러져서 웬 남자한테 업혀 들어오는데 얼마나 놀란 줄 알아?”
남자? 나는 그 남자의 정체에 대해 잠시 생각해야했다. 그리고 화들짝 아까 주사바늘을 꽂았던 팔의 옷소매를 걷어보았다. 시뻘건 멍자국이 남아있었다.
“그 남자가 돈은 계좌로 넣어달라던데, 전화번호로 넣으면 된다고. 무슨 거래가 어쩌고 하더니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니?”
언니의 입을 통해 나오는 그 남자의 정체. 그럼 그건 꿈이 아니었다. 그 남자는 내 팔에서 피를 뽑았고 곧 내 아이의 복제 인간을 만들어다 줄 것이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끔찍한 꿈을 꾸었지만 곧 나는 다시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지민이와 함께.
“언니, 병원에 가야겠어. 우리 지민이가 보고 싶어.”
지민이를 쏙 빼박은 그 아이가 오면, 그 아이가 건강한 장기를 이식해 줄 수 있을 만큼 다 자라면 우리 지민이는 다시 건강해 질 수 있겠지. 나는 지민이가 이미 건강을 되찾은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4
그 남자가 내 팔에서 피를 뽑아간 지 사흘째 되던 날 새벽, 찢어질 듯 한 초인종 소리가 잠을 깨웠다. 문 밖에는 제법 커다란 광주리가 있었고 그 속에는 새근새근 단잠에 빠진 볼이 발그레한 아기가 있었다. 나는 그 아기를 보고 너무 놀라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우리 지민이의 백일 때 모습과 흡사한 이 아기가 바로 그 복제 인간인 모양이었다. 광주리에는 카드가 있었고 카드에는 한 번 더 남자의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나는 얼른 아이를 안고 집으로 들어갔다.
아이는 숨을 쉴 때마다 단 내를 풍겼다. 지민이가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밤에 깨서 잘 울지도 않고 우유도 잘 먹고 웃기도 잘 웃었다. 또 급속 복제라더니 성장 속도가 정말 빨랐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는 아이는 집에 온지 일주일이 되자 두 돌은 지난 아이처럼 더듬더듬 말을 따라하고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온 집안을 헤집어놓았다. 덕분에 언니와 나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다.
“우리 지민이 너무 예쁘지.”
젖병을 물고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든 아이를 보다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언니가 등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니? 지민이는 병원에 있잖아.”
“그렇지만 지민이랑 너무 똑같아. 누가 진짜 지민이인지 모를 정도로.”
“쓸데없는 소리 한다. 이 애는 그저 지민이의 복제품일 뿐이야.”
“하지만…….”
“그만해. 누가 뭐래도 지민이는 하나뿐이야. 똑같이 생겼다고 이 아이가 지민이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야. 난 병원에 다녀올게.”
언니는 매섭게 말을 하고 일어나버렸다. 나는 잠시 멍하게 있다가 다시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민이를 위해 건강하게 만들어진 아이. 이 속도로 크면 다음 주 쯤엔 지민이만큼 다 자랄지도 모른다. 그러면 계획대로 지민이는 이 아이의 건강한 장기들을 바꿔치기 할 수 있다. 그 다음엔? 갑자기 아이가 몸을 뒤틀며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얼른 아이를 끌어안고 달래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 착한 아기…….”
등을 토닥이는 내 손길에 아이의 울음은 점차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번엔 내가 눈물이 터져 나왔다. 이 아이의 건강한 몸과 지민이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몸을 바꾸고 나면 그 다음엔? 나는 그 후의 일들이 끔찍해지기 시작했다. 아가… 아가……. 나는 나도 모르게 기도했다. 아가, 너무 빨리 자라지 말려무나.
*
내 바람과는 달리 아이는 무섭게 빨리 성장했다. 집에 온지 이주가 지나자 4살인 지민이만큼 자랐다. 자고 일어나면 쑥쑥 자라있는 아이를 보는 느낌도 새로웠다. 제법 말을 하는 데에 재미를 붙였는지 아이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건 뭐에요? 저건 뭐에요? 물어보기 시작했고 나도 그런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고 앉아 이것저것 설명해주는 시간이 늘어났다. 때문에 자연스레 지민이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는 횟수도 줄었다. 매일같이 혼자 병원을 다녀오는 언니는 그런 나를 못마땅하게 여기며 혀를 끌끌 찼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어차피 오래 보지도 못할 텐데 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애써 지민이보다 이 아이에게 더 향하는 마음을 모른 척 숨겨놓았다.
“수술 날짜 잡았어.”
아이를 데리고 블록 쌓기를 하고 있던 내 뒤로 언니의 무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나는 순간 귀를 의심하며 언니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언니가 한 번 더 목소리에 힘을 주어 대답했다.
“수술 날짜 잡았다구.”
당연한 수순이었건만, 계획했던 대로 이 즈음해서 수술날짜를 잡는 것이 맞는데도 나는 전혀 뜻밖의 말을 들은 것 마냥 충격을 받았다. 아이와 눈이 마주쳤고 아이는 나를 보며 ‘엄마’라고 부르며 까르르 웃었다. 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가 크는 속도가 너무 빨라. 지금 빨리 서두르지 않으면 이식하는데 문제가 될지도 몰라. 아이가 너무 커버리면 말이야. 얘, 듣고 있니?”
“언제로 잡았어?”
“이번 주말.”
이번 주말이라면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언니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렇게 갑자기!”
하지만 언니는 내 그런 반응을 예상했던 듯 말을 잘라 섰다.
“갑자기 아니야,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이야, 오히려 늦었어. 내일 바로 저 아이 입원시킬거야.”
“언니!”
“정신 차려! 쟨 복제품일 뿐이야. 지민이는 지금 병원에 있고, 하루가 다르게 메말라가고 있어. 넌 도대체 엄마라면서……!”
언니는 화가 난 듯 소리를 치다 입을 다물고 일어섰다.
“잊지 마. 저 아인 지민이 때문에 존재하는 거야. 지민이가 아니고는 존재의 의미가 없어. 복제품은 그런 거야. 명심하라구.”
*
하지만 시작이 어떠했든 인생이라는 게 마음먹은 대로, 계획했던 대로만 흘러가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뜻대로 되지 않으니 뛰어 넘으려 안간힘을 쓰고 발버둥을 치고 마침내 극복한 뒤 삶에 대한 애착을 느끼게 되는 거겠지. 밤 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지금 엄마로써 갈등의 기로에 서 있었다. 병원에 있는 지민이와 눈앞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이 아이, 둘 중 누구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들쳐 안았다. 아침이 되면 이 아이는 뭣 모른 채 병원으로 가서 차가운 수술대에 누울 준비를 해야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순 없었다. 이 아이도 틀림없는 지민이었다. 도저히 버릴 수 없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향했다. 새벽이라 병원은 조용했다. 지민이가 입원중인 격리치료실 창문으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다. 부쩍 말라 잠든 지민이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물이 나왔지만 나는 입술을 깨물며 조용히 돌아 나왔다. 그래도 지민이는 병원에 있으니까, 있다 보면 뭔가 또 다른 방법을 찾아내겠지. 언니, 지민이를 부탁해. 나는 그 한마디가 적힌 쪽지를 놓고 아이를 테리고 집을 나왔다. 아침이 되면, 그 쪽지를 본 언니는 난리가 나겠지.
5
울어대는 휴대전화를 강에다 던져버렸다. 나는 아이를 안고 정처 없이 떠돌았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얼마쯤 집에서 가져온 돈으로 끼니를 때우고 잠잘 곳을 마련해가며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하지만 언니는 어떻게 알고 나타났다. 이제껏 그렇게 무서운 언니의 얼굴은 처음이었다. 나는 아이를 안고 달렸다. 뺏길 수 없어. 지민이를, 그렇게 아픈 지민이를 포기하고 데려온 아이였다. 이제 와서 뺏길 수는 없었다.
“얘!”
그 때, 날카로운 언니의 비명소리. 그 순간 나는 눈앞으로 덮쳐오는 커다란 트럭을 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사방이 고요해졌고 오로지 목이 터져라 울어대는 아이의 울음소리만 메아리처럼 퍼져나갔다.
그렇게-거기서 나는 차라리 모든 게 끝났어야 했는데.
6
“……아하, 이제 시각 센서만 연결하면 다시 문제없어요. 이 모델은 어차피 장기배양이 다 되어있는 제품이라 언제든지 신제품으로 이식할 수 있어요. 냉동 보관보다야 이렇게 로봇 인간 속에 넣어서 살아 숨 쉬고 움직이도록 계속 작동시켜주는 게 나중에 직접 고객님의 몸에 이식할 때도 거부감 없이 안착할 수 있으니까요. 조금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깨어날 겁니다…….”
이게 무슨 소리지? 눈보다 귀가 먼저 깨어났다. 낯선 사내의 목소리에 이어 귀에 익은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들었다.
“지난 한달 간의 기억은 지워주세요. 전혀 기억하지 못하게. 그리고 우리 지민이를 딸이라고 기억하게 했던 것도 지워주세요. 아이에게 해코지 못하도록 그렇게 만들어놨더니만. 역시 로봇은 어쩔 수 없나 봐요.”
언니였다. 그런데 저게 다 무슨 소리일까. 나는 찬찬히 눈을 떴다.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진짜 인간 같은 로봇이 나오고 또 복제 인간을 만들어 내도 모성이라는 감정이 누가 가르쳐준다고 그게 되는 건가…….”
사내가 말을 하며 무심코 나를 돌아보다 입을 딱 다물었다. 그리고 나는 사내의 뒤편에 있는 거울을 통해 내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얼굴의 피부가 반쯤 날아갔고 그 아래로 피복이 벗겨진 전선들이 거미줄처럼 엉겨있었다.
“얘!”
입을 다문 사내에 이어 언니의 외마디가 터져 나왔다.
“……언니?”
돌아 본 내 눈에 비친 언니의 얼굴은 또 한 번 나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이제껏 내 얼굴인 줄 알았던 그 얼굴은 마주 서 있는 언니의 얼굴이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어루만지다 얼굴주위로 엉겨있는 전선을 마구 뜯어내는 나를 보고 사내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메모리칩이 망가진 모양이군요. 특정 얼굴을 인식하지 못하던 기능이 망가졌어요. 본인이 로봇이라는 것도 자각한 것 같고…….”
불꽃이 튀었다. 나는 곧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사내가 다가와 굽어져 있던 팔 다리를 편안하게 펴서 나를 눕혀주었다. 그리고 언니와 함께 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에이, 못쓰겠는걸요. 메모리칩을 다시 복구하는 것보다 차라리 새 모델로 바꾸는 게 훨씬 돈이 덜 들겠어요. 장기 배양은 되어있으니까 모델만 바꾸면 되겠는데?”
사랑하는 언니. 고마운 언니. 무서운 언니.
“그래요. 나도 그게 마음이 편하겠네요.”
언니가 돌아섰다. 너무나 간단히. 언니가 돌아서자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사내는 내 목 뒤로 손가락을 집어넣어 얼마 남지 않은 에너지 배터리를 꺼내버렸다.
“참, 아이 수술은 잘 되었나요?”
“다행이.”
점점 멀어지는 두 사람의 대화가 무심한 발소리와 함께 찬찬히 잦아들었다. 나는, 어렴풋이 떠오르는 지난 일들을 되새기며 천천히 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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