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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회 간호문학상 수필 당선작
아버지의 냄새
기사입력 2010-12-23 오후 15:55:24
- 민주혜(대전보건대학 간호과 3학년)
제가 사는 곳엔 이곳만의 냄새가 있습니다. 오일장마다 피어나는 어묵국물의 냄새, 채소가게 아저씨의 흙 섞인 땀 냄새, 집으로 향하는 공원의 풀 냄새, 통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나풀거리는 교복 냄새,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집집마다 고유의 냄새가 있듯 어느 곳이든 분위기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에게도 냄새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금 몹시 들떠 계십니다. 나들이를 가는 것도 아닌데 옷장에서 몇 벌의 옷을 꺼냈다 들여 놓았다 하는지 모릅니다. 엄마, 아버지는 분홍 원피스 좋아하셨잖아. 엄마는 그제야 아차, 재빨리 옷을 갈아입으십니다. 이제서보니 왜 아버지께서 엄마더러 벚꽃 같다고 했는지 알 듯 싶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일 년에 한 번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갈 때마다 처음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오늘 가는 곳처럼 제겐 낯선 분이셨지요.
아버지는 늦은 밤에 들어오셨다가 새벽 식사를 받으시고는 다시 출근 하셨습니다. 친구들처럼 공손하게 두 손 모아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지요. 닭이 울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도 부엌에 서서 달그락 설거지를 하고 계신 엄마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다닐 땐,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가슴은 봉숭아처럼 깊고 달달한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밤바람에 머물렀다 온 아버지의 외투에선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쭈그려 맡던 밍근한 매연 맛이 날 뿐이었습니다. 그 외투 자락의 매연 냄새가 진해질수록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지요.
엄마는 큰언니더러 운전을 맡기십니다. 아무렴, 엄마가 직접 차를 몰고 그곳을 가는 것은 무리일 테지요. 분홍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뒷좌석에 앉고 저는 큰언니 옆 조수석에 앉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진 가끔 뒤를 돌아 엄마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에게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톡, 건드리면 다 져 버린 꽃잎처럼 돌돌 말려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몇 해 전, 아버지는 모처럼 생긴 휴가에 낚시를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은 낚시터도 아닌 병원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지요.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눈에선 새파란 파도가 몰려오고 떠나갔습니다. 파도가 밀려간 자리엔 붉은 노을이 저물어 가고 있었지요.
엄마는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셨습니다. 분명 아까 아침에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는데……. 엄마는 연신 이 말만 뱉고 계셨습니다. 큰언니의 부축으로 가까스로 일어난 엄마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일어나신 엄마는 곧장 영안실로 달려 가셨지요.
“애들한테 기름 냄새 안 옮기겠다고 늘 집에만 오면 씻은 몸을 또 씻고 또 닦아내던 사람이에요. 일 년 내내 밖으로밖에 돌 수 없어 얼마나 아파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낚시 가자는 소리에 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고는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아비 노릇 제대로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그렇게 자꾸만 되뇌었는데…….”
엄마는 외할머니의 손을 꼭 쥐고 말했습니다. 도중에 나를 무릎에 앉혀 안고는 불쌍한 내 새끼, 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요.
어느덧 차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묻은 바다가 보입니다. 뒷좌석의 엄마는 바다처럼 깊은 두 눈을 창문에 대고 껌뻑껌뻑 밖을 바라보십니다. 엄마의 옆 자리로 소금기를 머금은 한줄기 빛이 들어와 차 안을 환히 밝혀줍니다. 반가움에 얼른 창문을 열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킁킁 맡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투박하고 차갑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그렇듯 아버지가 계신 이곳에도 이곳만의 냄새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꽃잎이 사뿐히 내려앉듯 조금씩 목덜미가 간지럽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속으로만 내비치는 것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엔 아버지를 묻은 바다뿐만 아니라 모래와 바위, 바람까지도 담겨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엄마의 분홍 원피스 소매 자락엔 눈물 자국이 스며들었습니다. 수평선 너머엔 복숭아 볼을 삼킨 듯 발그레한 노을이 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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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사는 곳엔 이곳만의 냄새가 있습니다. 오일장마다 피어나는 어묵국물의 냄새, 채소가게 아저씨의 흙 섞인 땀 냄새, 집으로 향하는 공원의 풀 냄새, 통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나풀거리는 교복 냄새, 현관을 열고 들어서면 집집마다 고유의 냄새가 있듯 어느 곳이든 분위기라는 것이 있나 봅니다. 그리고 제 아버지에게도 냄새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지금 몹시 들떠 계십니다. 나들이를 가는 것도 아닌데 옷장에서 몇 벌의 옷을 꺼냈다 들여 놓았다 하는지 모릅니다. 엄마, 아버지는 분홍 원피스 좋아하셨잖아. 엄마는 그제야 아차, 재빨리 옷을 갈아입으십니다. 이제서보니 왜 아버지께서 엄마더러 벚꽃 같다고 했는지 알 듯 싶습니다.
오늘 가는 곳은 일 년에 한 번 찾는 곳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갈 때마다 처음 같은 곳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도 오늘 가는 곳처럼 제겐 낯선 분이셨지요.
아버지는 늦은 밤에 들어오셨다가 새벽 식사를 받으시고는 다시 출근 하셨습니다. 친구들처럼 공손하게 두 손 모아 안녕히 다녀오세요, 라는 말을 할 수 없었지요. 닭이 울기도 전에 일찍 일어나도 부엌에 서서 달그락 설거지를 하고 계신 엄마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친구들과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다닐 땐, 엄마 품에 안겨보고 싶었습니다. 엄마의 가슴은 봉숭아처럼 깊고 달달한 맛이 났기 때문입니다. 밤바람에 머물렀다 온 아버지의 외투에선 놀이터 나무 그늘에서 쭈그려 맡던 밍근한 매연 맛이 날 뿐이었습니다. 그 외투 자락의 매연 냄새가 진해질수록 새벽에 일어나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지요.
엄마는 큰언니더러 운전을 맡기십니다. 아무렴, 엄마가 직접 차를 몰고 그곳을 가는 것은 무리일 테지요. 분홍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뒷좌석에 앉고 저는 큰언니 옆 조수석에 앉습니다. 도착하기 전까진 가끔 뒤를 돌아 엄마를 바라봅니다. 그러나 묵묵히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에게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톡, 건드리면 다 져 버린 꽃잎처럼 돌돌 말려 떨어질 것만 같습니다.
몇 해 전, 아버지는 모처럼 생긴 휴가에 낚시를 하러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연락을 받고 달려간 곳은 낚시터도 아닌 병원이었습니다. 돌아오는 도중 사고를 당하고 만 것이지요.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아버지의 눈에선 새파란 파도가 몰려오고 떠나갔습니다. 파도가 밀려간 자리엔 붉은 노을이 저물어 가고 있었지요.
엄마는 떠난 아버지의 영정 앞에서 제대로 울지도 못하셨습니다. 분명 아까 아침에 현관까지 배웅해 주었는데……. 엄마는 연신 이 말만 뱉고 계셨습니다. 큰언니의 부축으로 가까스로 일어난 엄마는 그만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일어나신 엄마는 곧장 영안실로 달려 가셨지요.
“애들한테 기름 냄새 안 옮기겠다고 늘 집에만 오면 씻은 몸을 또 씻고 또 닦아내던 사람이에요. 일 년 내내 밖으로밖에 돌 수 없어 얼마나 아파했는지 몰라요. 오랜만에 낚시 가자는 소리에 애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줄 알고는 얼마나 속상했겠어요. 아비 노릇 제대로 해야 되는데, 해야 되는데……. 그렇게 자꾸만 되뇌었는데…….”
엄마는 외할머니의 손을 꼭 쥐고 말했습니다. 도중에 나를 무릎에 앉혀 안고는 불쌍한 내 새끼, 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지요.
어느덧 차는 국도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를 묻은 바다가 보입니다. 뒷좌석의 엄마는 바다처럼 깊은 두 눈을 창문에 대고 껌뻑껌뻑 밖을 바라보십니다. 엄마의 옆 자리로 소금기를 머금은 한줄기 빛이 들어와 차 안을 환히 밝혀줍니다. 반가움에 얼른 창문을 열어 바다에서 부는 바람을 킁킁 맡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투박하고 차갑습니다. 제가 사는 곳이 그렇듯 아버지가 계신 이곳에도 이곳만의 냄새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꽃잎이 사뿐히 내려앉듯 조금씩 목덜미가 간지럽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속으로만 내비치는 것입니다. 창밖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엔 아버지를 묻은 바다뿐만 아니라 모래와 바위, 바람까지도 담겨지는 것 같습니다.
어느새 엄마의 분홍 원피스 소매 자락엔 눈물 자국이 스며들었습니다. 수평선 너머엔 복숭아 볼을 삼킨 듯 발그레한 노을이 져갑니다.
편집부 news@koreanurs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