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04-10-07 오전 09:57:23

지난 하계휴가로 중3 아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북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내 안의 오랜 꿈이기도 한 뭉크의 그림 `절규'와 `솔베이지의 노래' 그리고 `피요르드'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암스테르담을 경유해 코펜하겐에서 여행을 시작했다. 안데르센의 고향 오딘세가 멀지 않아 그의 기념관을 찾았다. 동화의 모티브로 장식된 실내와 초고들이 보존된 기념관을 둘러보고 나오니 야외무대에서는 동화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동화의 나라답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헬싱키는 색다른 감회로 다가왔다. 선선한 날씨와 청량한 공기는 이 땅에 내려진 축복일 것이다. 이러한 환경과 서두르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자세가 핀란드 사람들의 장수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시벨리우스를 기념해 조성한 공원과 대성당을 둘러보고 옛 소련 연방국가였던 에스토니아의 고도 `탈린'으로 향했다. 이 도시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의 어느 마을에 안착한 느낌을 주었다.

　실자라인호를 타고 스톡홀름으로 향하던 중 또 다른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나보았다. 부산과학영재고 학생들이 러시아에서 3주간의 과학캠프를 마치고 노벨상의 본산인 스톡홀름으로 견학을 간다고 했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환영 만찬이 열리는 메인홀에서 전문 가이드를 따라 견학했다. 시청사 옆에 위치한 탑의 전망대에 올라 스톡홀름 시가지를 조망하니 이 도시가 왜 북유럽의 베니스로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 여정지 노르웨이로 가기 위해 오슬로행 기차를 탔다. 오슬로 시청 내부에 걸려 있는 뭉크의 작품 `인생'을 감상하고 그 유명한 `절규'가 전시돼 있는 국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밀려오는 공포를 한 편의 회화로 극명히 드러낸 그의 그림 앞에 서니 이게 꿈인가 싶었다. 그의 그림과 아름다운 정원을 갖추고 있는 프롱네르 공원에서, 비겔란이 14년간 심혈을 기울여 조각한 `모노레탄'은 인간의 동질한 내면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었다.

　이번 여행의 절정으로 매겨 두었던 피요르드를 향했다. 피요르드의 시작을 보여주는 플롬라인의 기차는 만년설이 녹아 폭포를 이루는 협곡을 따라 움직였다. 좌우 어느 쪽에 눈을 두어야 할 지, 현란하고 장엄하게 펼쳐지는 풍광들은 차라리 고통스러웠다. 우리의 고통을 알겠다는 듯 기차는 큰 폭포 앞에 멈춰 섰다. 이어지는 비명들, 그리고 긴 한숨. 1909년 이 선로를 처음 개설하면서 20개의 터널 중 18개를 수작업으로 만들었다고 하니, 자연을 지키고자 기울였던 그들의 노력이 없었던들 오늘 노르웨이의 피요르드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었을까!

　피요르드의 끝 도시 베르겐은 그리그의 고향이다. 삼각 뽀쭉 지붕들로 이루어진 예쁜 색깔의 나무집들은 우리나라 사진작가가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여행지 33곳'에 실어놓았을 만큼 아름다웠다. 베르겐에서 짐을 부친 우리는 가벼워진 몸으로 암스테르담의 명소 `안네프랑크 하우스'를 방문했다. 실내 벽면에 새겨진 안네의 일기 단편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만난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무심했던 나의 지난 날을 뒤돌아 보게 했다. 실자라인에서 만났던 스톡홀름의 노간호사와, 아예 전기 밥통을 울러 메고 발품을 팔며 여행을 다니는 우리나라 젊은이들.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여행은 나에게 또 다른 내일을 가르쳐 주었다.

변묘숙  news@nurs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