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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아버지의 휠체어
문연화(서울시립동부병원 수간호사)
기사입력 2007-12-06 오전 09:44:50

어느 날 아버지가 누우셨다. 너무나 어이없는 한 순간의 사고였다.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서. 기적을 바라며 기도와 눈물을 흘리며 몇 날, 며칠을 울며불며 그렇게 보냈다.
너무나 자존심이 강하고 깔끔하신 분이었기에 시골 병원에서 당신의 모습을 주위 분들한테 보이고 싶지 않다며, 서울로 올라가는 내게 “나도 네가 근무하는 서울 병원으로 데려가 다오” 하시던 아버지가 너무나 불쌍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그날, 미쳐버릴 것 같았다.
시간은 이런 우리 가족의 아픔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아니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이, 참으로 무심히도 잘만 흘러갔다. 피폐해진 아버지의 마음도 몸도 지쳐갈 때쯤, 그 누구랄 것도 없지만 그저 아무 말 없이 우리는 병실 앞에다 휠체어를 갖다놓았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손만이라도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만 있다면…” 아, 왜 이다지도 잔인하고 가혹하단 말인가. 다리가 마비될 거면 손은 그냥 내버려 두시지. 원망의 피눈물이 흘렀다.
농사를 많이 지으신 아버지는 유난히도 깔끔하신 분이었다. 일 하던 중간에도 평상복으로 갈아입고 마을회관에서 놀다 오시기도 하고, 머리가 조금이라도 자라면 한 달에 두 번이라도 이발소에 가곤 하시던 분이었다. 새벽 동트기 전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고, 항상 동네에서도 부지런하길 아버지를 따라오실 분이 없었다. 평생을 일밖에 모르고 사셨던 분이 하루아침에 꼼짝도 못하는 몸으로 누워버렸다.
아버지는 식사량을 줄이기 시작했다. 몸을 가볍게 하려고, 그래서 가족들이 당신을 휠체어 태우는 데 덜 힘들게 하려고. 우리는 또 부여잡고 울었다.
아버지의 회복은 시간의 흐름을 보란 듯이 비웃고 있는데, 아버지가 이제는 또 울지도 않으신다. 그래서 우리도 울지 못한다.
아버지의 메마른 피부가 탄력을 잃어갔다. 지켜보는 우리의 희망도 점차 꺾여져 갔다. 다만 아버지 앞에서 서로들 내색을 하지 않을 뿐. 아버지의 말씀처럼 손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기다리며, 희망이란 두 단어에 쉬지 않고 기도를 한다.
기다릴 것이다. 아버지보다 먼저 희망을 꺾지는 말아야 한다는 생각과 다짐으로, 오늘도 휠체어를 기쁨으로, 희망으로 바라본다. 이제 아버지는 밭에서 일하시는 엄마를 기다리지 않고, 차츰 밖으로 나가기도 하시고 엄마가 일해 놓으신 것들을 휠체어에 싣고서 집에까지 오기도 하신다.
이제 우리도 웃음을 찾아가고, 아버지 앞에서 농담도 한다. 아버지의 외롭고 아픈 감정을 읽어 드리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고 말로만 하고 마는 공약이 되어 너무나 죄송하고 죄송할 뿐이다.
지금 이 현실에 내가 간호사인 것이 얼마나 다행이고 감사한지 모른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을 티끌만큼이나마 되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기에. 아버지 사랑해요. 우리들 곁에 꼭 살아계셔 주세요.
사랑하는 아버지의 둘째딸 올림.
문연화(서울시립동부병원 수간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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