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 2011-05-11 오후 16:52:49

　신입간호사로 첫 발을 내디딘 지 어느새 1년이 되어 간다. 암병동에서 일을 하다 보면 환자분들의 임종까지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아 나도 모르게 삶과 세상에 대한 시각이 비관적으로 바뀌는 걸 느낀다. 어제까지 소소한 대화를 나눴던 환자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때로는 떠나는 환자와 그를 떠나보내는 가족들의 상황을 깊은 마음으로 함께 하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 임종 앞에서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오늘 해결해야 할 많은 일들이 머릿속에 가득할 때도 있다.

　제때에 느끼지 못한 감정들은 예고 없이 다시 찾아와 나의 트라우마가 되었음을 확인시켜주기도 한다. 내가 담당했던 한 환자의 임종 상황이 아직도 생생하고, 지금도 문득 그 분이 생각나 마음이 아플 때가 있다. 엄마를 잃고 울던 딸의 모습은 외할머니를 잃고 엉엉 울던 우리 엄마를 떠오르게 해 가슴이 먹먹해진다.

　한 사람의 생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는 일은 어찌 보면 엄청난 인연이다. 이를 감사히 여기는 마음으로 그 분들을 떠나보내야겠다.

　신입간호사로서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 아찔하기만 하다. 처음엔 출근 그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출근길에 잠깐 눈만 붙여도 환자를 간호하는 꿈을 꿨다. 잠꼬대로 엄마에게 `소변 얼마만큼 보셨어요?'라며 물어본 적도 있다. 머리맡의 노트북을 부여잡고 자다 깨다 밤을 샌 적도 있다.

　이제는 힘든 1년을 견디어낸 내가 대견하게 느껴진다. 환자들을 대하는 일도 익숙해졌다.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하고 있는 나를 `이쁜이 왔냐'며 친근하게 불러주시는 환자들을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웃어주시는 분들이 있어 나는 오늘도 힘을 낸다.

　이제 막 일어서서 한 발자국 떼 보려는 아이처럼 불안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할 테지만, 아이에겐 가능성이 있고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이 있기에 조금 더 걸어보고자 한다.

　사람의 일생을 24시간으로 바꿔 계산해보면 20대 중반쯤의 시계는 아침 8시 정도라고 한다. 해놓은 것은 없는데 벌써 20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 조급했던 마음에 위안이 된다.

　아침 8시, 이제 씻고 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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