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 윤리를 수호하는 가톨릭 의료기관의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최근 의료 현안과 관련 법제화 논의가 뜨거운 생명의 시작과 끝에 대한 첨예한 윤리적 쟁점들을 심도 깊게 다루는 장이 마련됐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윤리위원회 산하 의료윤리 전문소위원회가 주관하고 가톨릭 생명윤리연구소가 후원한 ‘제5차 가톨릭 의료윤리 심포지엄’이 지난 11월 28일 가톨릭대학교 성의회관에서 온·오프라인으로 동시에 개최됐다. 의사, 간호사, 윤리학자, 법률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 150여 명이 참석해 활발한 논의를 이어갔다.
의료윤리 전문소위원회 위원장인 박은호 신부는 개회사에서 "이번 심포지엄이 의정 사태를 마무리하고 가톨릭의 변하지 않는 정체성인 ‘인간생명’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민창기 가톨릭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축사에서 최근 조력존엄사 법안,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 모자보건법 개정안 등 의료윤리 관련 사안들이 법제화의 형태로 논의되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했다. 민 의무부총장은 이러한 법안들이 “생명의 시작과 끝에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는 연약한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강조하며 의료윤리 수호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말기 환자의 연명의료와 관련된 윤리 문제 △임신과 생명 탄생에 관한 가톨릭 의료윤리 △모자보건법 개정과 법적 쟁점 등 세 가지 분야로 구성돼 생애 전 주기의 윤리 문제를 아울렀다.
특별강연에서 가톨릭대 여의도성모병원 호흡기내과 윤형규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말기 이전까지 확대하려는 최근 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윤 교수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과도하게 강조될 경우 의학적 판단에 따라 보장되어야 할 환자의 '최선의 이익'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회적으로 취약한 환자군의 경우 치료 중단 결정이 쉽게 이루어질 가능성을 경고하며, 말기 범위 확대에 앞서 충분한 돌봄과 논의가 보장되는 환경 구축이 우선되어야 함을 역설했다.
‘생명의 시작과 가톨릭 의료윤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는 나프로임신법과 신생아 소생술 윤리가 다뤄졌다.
조미진 서울성모병원 나프로임신센터 나프로프랙티셔너 간호사는 난임 정책이 의학적 시술에 의존하는 한계를 짚고, 여성 생식주기를 자연적으로 회복시키는 나프로임신법이 생명 탄생의 본질적 의미를 훼손하지 않는 윤리적 접근임을 설명했다. 조 간호사는 단순히 임신 성공이 아닌 안정적이고 행복한 가정 형성이라는 궁극적 목적이 의료 및 사회 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진 강연에서 서울성모병원 소아청소년과 신생아분과 김세연 교수는 신생아 집중치료 현장의 소생술 유보 및 중단 결정 사례를 소개하며, 가톨릭 의료윤리가 강조하는 ‘아기의 최선의 이익(Best Interests of the Baby)’ 원칙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부모의 결정권이 제한되더라도, 윤리위원회가 의료진과 협력하여 생명의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전문적 판단을 내릴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법무법인 백석의 방선영 변호사는 최근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윤리적·법적으로 고찰했다. 방 변호사는 형법과의 정합성을 확보하지 않은 상태에서 별도의 개정이 추진되면 법체계 혼란과 생명 보호의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임신 관련 윤리 규범을 사회적 합의 없이 법제화 형태로 단순화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생명권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박은호 신부는 “이번 심포지엄은 생명의 시작에서 말기까지 CMC가 한결같이 지켜온 생명존중의 정신을 다시 선명하게 드러내는 자리였다”며 “앞으로도 임상 현장의 윤리적 딜레마 해법을 모색하겠다”고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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